亡者에게

by 온율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선량하지도 경건하지도 않다. 그저 조금 정직할 뿐이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차마 이런 식으로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어릴 적 열이 오르면 늘상 시달리던 환청. 내 기억 속의 잔상인지 아니면 기억으로 남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해서 이승에 남아버린 이들의 잔상인지 나는 굳이 애써 확답을 얻고 싶지 않았다. 기가 허해서. 라고는 죽어도 말하기 싫었기에 알약으로 된 마그네슘을 삼켰다. 결핍. 사랑받지 못하고 침묵에 길들여지고 삶을 포기할 것을 종용당하고 생존의 가능성을 숨쉬듯 의심해야만 하는 그 모든 격동과 상실을 오직 마그네슘 결핍 하나로 치환할 수 있는 현대의학이란 얼마나 숭고한가. 그러나 그러한 숭고함으로도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나는 이내 환청 속에 놓이는 것이 차라리 편안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부러 베개도 이불도 쓰지 않고 매가리 없이 누워 천장을 빤히 바라보다가 서서히 눈을 감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사분사분 조여드는 어깨와 팔. 지그시 눌리는 쇄골과 목구멍. 그리고 목소리. 목소리들. 이것은 어느 나라의 언어인가. 내 기억의 되감기에 불과하다면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럴 수 없다. 단어들. 파편들. 어지러이 떠다니는 음과 음의 상충. 뜻을 품지 않았음에도 억양만은 분명히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억양과 억양의 회오리 속에서 무언가가 심지처럼 타오르는 것을 듣는다.

같이 가자. 나랑 같이 가자.

아. 그것이 당신이 마침내 품은 뜻인가.

이 짓거리를 대체 몇 번을 반복해야 당신은 떠날 텐가.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귀신이니 뭐니 하는 것은 인간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상상의 피조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

그래. 가장 예쁠 나이에 목숨이 다한 그 원한이 얼마나 크겠는가. 무엇으로 가려지겠는가. 가장 꿈 많고 세상이 좋을 나이에 자신의 육신을 내다버린 그 세상이 얼마나 원통하겠는가. 당신의 죽음을 생각하면 나조차도 이렇게 숙연해지는데 그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그러게 대체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던가.

어쨌거나 인간은 인간의 역사를 피해갈 수 없다. 사람이 만든 역사에 사람은 다시 치인다. 어쩌면 팔십 년 광주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당신을 그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이것은 슬픈 말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모든 사람이 이것을 간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의 선량하고 경건한 심성에는 유독 이것이 무거웠겠지. 어리석다고 타이르기에는 스물셋의 나이는 너무 찬란했고 그 아이는 다만 타인을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아닌 살려냈다는 안도감이 되기를.

그러나 끝내 불길은 잡히지 않았고 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완전한 타인이었던 한 사람과 그 사람을 구하고 싶었던 또 한 사람. 나는 그 타인이 누구였는지는 모른다. 다만 젊다못해 어린 스물셋 그 아이는 나의 혈연이었다. 비록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졌을지라도. 요절을 한 죄로 사진첩의 얼굴조차 지워지고 말았을지라도. 그런데 내가 어떻게 모르겠는가. 나의 유년을 통틀어 가장 애달프게 나를 부른 목소리. 나와 너무도 닮았던 그 외로움의 고도를. 비록 당신의 모든 궤적을 이해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나는 나를 찾는 그 유일한 언어를 알아차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피에서 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꼭 당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인간은 인간의 역사를 피해갈 수 없고 우리는 여전히 사람에 사람이 치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 세대를 박살낸 학살의 여운은 과거가 아닌 전조증상이라도 되는 듯이 되풀이되고 있고 불안과 조롱과 반목의 일변도를 걸으며 인간들의 심성은 더욱 천박해졌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오히려 부끄러운 것이 되었고 죄책감을 잃었듯이 살아남았다는 자각조차 잃어간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선량하지도 경건하지도 않다. 당신에게서 그것까지 물려받지는 않았다. 다만 그저 조금 정직할 뿐이다. 물론 상처를 받은 것 이상으로 상처를 준 적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로 인해 아프고 다치게 한 일들도 더러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맹세코 타인에게 먼저 악의를 품은 적은 없다. 정직함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닌 이런 것이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만일에 이러한 정직한 심성이 언젠가의 당신처럼 뜻하지 않은 순간에 타인을 위하여 나를 버리게 한대도 나는 별 수 없다 여기고 말 것이다. 이렇게나 악의를 품는 데에 서툰 것은 어쩌면 어릴 적부터 너무 많은 악의를 받아서인가. 내 머리맡에서만 맴돌던 당신의 악의는 차라리 애틋하게 느껴질 정도로 산 사람들의 이승에서의 악의는 지나치게 역겹고 불결했다. 그래서 나는 내 대에서 이것을 끊고 가고 싶다. 유약하다고 비웃어도 좋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토록 유약하게 된 데에는 당신의 기여도 적지는 않지 않은가. 마치 영원히 지속될 듯 온몸의 열을 달구던 그 환청들을 나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텐데. 나이가 들면서 점차 가위도 잘 눌리지 않게 되고 그다지도 쟁쟁하게 울리던 목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게 되었으나 그 대가로 오른쪽 귀에는 매 순간 칼로 찌르는 듯한 이명이 들어앉았다. 고막에는 문제가 없으나 청력의 손실은 뚜렷하다는 소견에 그저 이것은 죽음의 무게인 것으로 여기기로 했다. 더는 마그네슘 따위를 들먹일 알량한 이성조차 남아있지 않다. 부정확하고 불완전한 과학의 소명만을 이성이라고 부르는 것도 퍽 우습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고요를 잃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아직도 나를 떠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제는 내가 당신을 붙잡는 지경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정말로 데려가고 싶었으면 좀 미리 데려갔어야지. 고통은 알아도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는 아직 모르던 나이에. 당신보다도 훨씬 더 어렸던 나이에. 거둬가려면 그때 거둬갔어야지. 당신 덕에 나는 샛노란 것이 푸르른 것이 되고 푸르른 것이 검붉은 것이 되는 지극히 당연한 순리에 크게 집착하지는 않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나는 여전히 신을 믿지는 않지만 오른쪽 귀로는 전화를 받을 수도 없는 사람이 되었고 이것이 언젠가는 이승이 아닌 곳으로 나를 이끄리라는 암울한 전망에 종종 사로잡히는 신경쇠약을 얻었으며 그래서 더더욱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의탁하다가 사소한 것들로 가슴에 대못을 박는 아주 빌어먹지도 못할 습관이 생겨버렸다. 그러니 순리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인가. 다만 이러한 고통을 모두 다 알게 내버려두고서 이제서야 진짜 같이 가자고 한다면은. 미련도 아쉬움도 없대도 한 떨기 응어리로 한스러움은 남지 않겠는가.

당신이 그렇게 해서 여기에 남았듯이. 나도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나는 내 대에서 이것을 끊고 가고 싶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도 타인을 향한 악의도 그럼에도 피어올랐던 선망도 열정도 기대도 그 무엇도 남지 않도록.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한 줌 재로도 감히 더렵혀지지 않도록 깨끗이 치우고 가고 싶다. 그러니 그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이 생에 내가 맺었기에 내가 지켜야 할 인연이 아직 있다. 이 인연만은 제대로 마치고. 너무 늦기 전에 당신이 가자는 대로 가겠다. 손과 손을 맞잡는 온기. 오랜 시간 그것을 그리워했을 당신을 위하여. 그리고 더는 외롭고 싶지 않을 나 자신을 위하여. 당신이 이끄는 그 배를 타겠다.

그 강 앞에서 나에게 그동안 고생했노라고 그 말 한 마디를 해줄 수 있다면. 나는 맹세코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할 것이다.

얼굴조차 모르지만 내 평생에 걸쳐 내 곁에 있었던. 나를 낳은 이들보다도 더 가까이에 있어주었던. 믿지 않으려 했지만 차마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무리기에는 너무나도 선명했던. 피로 이어진 그림자. 바로 당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