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아포칼립스

by 온율

비탈길에서 동그라미로 태어난 인생을 알고 있니.

이것은 구가 아니라 동그라미. 안에 채워진 것은 보지 마. 어차피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으니까. 차원이 한 꺼풀 도려내진 공간에는 피할 곳이라곤 없지. 엑스 축과 와이 축 외에 제 삼의 축이 있었더라면 옆으로 비켜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비탈길에서 동그라미로 태어났을 때에는 이미 그런 방법은 없었지. 오직 쭉 뻗은 일직선의 방향만이 존재할 뿐.

이것은 구가 아니라 동그라미.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비탈길에서 구르는 중이었지. 데굴데굴. 갓길에서 쉬어가는 이들이 눈에 들어온 적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 너머로 가닿을 수 없었지. 나에게는 엑스 축과 와이 축밖엔 없는걸. 그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어. 부단히도 힘을 내봤지. 하지만 힘을 낼수록 동그라미에는 중력가속도가 붙어. 더더욱 빨리 굴러떨어질 뿐이었지. 데굴데굴. 대체 이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이 차원의 세계에서 중력이라는 건 왜 없어지지 않은 거야. 하지만 불합리하다는 걸 깨달아도 다른 방향을 찾는 건 불가능하지.

그래서 동그라미가 마침내 추락하면 그 끝에서는 무슨 소리가 날까. 구가 아닌 동그라미는 다시 튕겨져 오를 수도 없어. 와장창. 선과 선이 끊어져 곡선이 그려지겠지. 그리고 곡선과 곡선이 부서져 점이 되고. 이윽고 증발해 소멸할 거야. 이 차원에서 일 차원으로. 일 차원에서 영점으로. 시작 따윈 없는 끝으로.

이것은 동그라미의 아포칼립스. 아포칼립스 세계에서는 으레 그렇듯이 그저 여기 이곳에 태어났을 뿐이지. 이 한복판에. 출발 신호탄을 들은 기억도 없는데 이미 운동이 궤도에 오른 이 와중에. 중력은 있지만 그에 저항할 어떤 작은 틈새조차 없는 아주 매끄러운 일직선 상에. 놓여져 있었을 뿐인걸.


구름의 차원을 알고 있니. 구름은 일과 삼분의 일 차원이다. 왜냐고. 글쎄. 어릴 때 책에서 그렇게 배웠는걸. 구름은 일 차원과 이 차원 사이 그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그것은 그림자는 있으되 응달은 없다는 뜻이다. 굳이 애써 이해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그런 걸 쓴 그 누군가도 온전히 이해하고 쓴 건 아닐 테니까. 다만 수도 없이 자기복제를 반복하는 프랙탈과 그를 풀이하는 기하학이 있을 뿐. 그래. 정확히는 일 점 삼삼삼삼삼 차원이지. 이 삼삼삼삼삼 나부랭이가 영원히 반복되어야 하겠지만. 아무려면 어때. 어차피 구름 속에서 온전히 살아 숨 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걸. 누구에게 그걸 증명해내라고 강요할 수 있겠어. 미치지 않고서야.

하지만 여기. 엑스 축과 와이 축밖에는 없는 시간을 견디며 약간은 미쳐버린 동그라미가 있었지. 동그라미는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얼굴을 분간하기가 싫어질 때면 그것을 다각형으로 변환시켜서 바라보는 고약한 버릇을 들였지. 비탈길을 굴러떨어지며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다양한 생김새의 다각형들을 마주치며. 모서리의 수가 많을수록 더 둥글 거라는 추론이 허무맹랑한 착각이라는 건 그때 배웠지. 어떤 다각형들은 모서리가 한 개 더 늘어나는 순간에 내부의 면적을 넓히지 못하고 흉측하게 찌그러지고야 만다는 걸. 그러면 모서리와 모서리 사이의 각도는 더 뾰족해지고. 그는 이내 가장 뾰족한 각도의 꼭짓점을 들이대며 으스대지. 그것이 자신의 강인함의 증거라도 된다는 듯이. 그 반대편에서 요각을 이루게 된 꼭짓점은 철저하게 감추면서.

하지만 그들이 감추는 것들을 온몸으로 관통할 수밖에 없는 동그라미가 있어. 아무리 첨예한 예각을 마주쳐도 비켜설 갓길이라고는 없어 그대로 돌진해버리는 방법만이 남은 일직선 상의 동그라미가. 그들에게 이것이 재난이 아닐 수 있는 건 이 동그라미가 사실은 딱 잘라 이 차원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약간은 투명해진 상태라서 충돌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만큼의 사소한 파장만을 일으키고서 그저 관통하다가 사라질 뿐이라서지. 그들의 처지에서는 그렇지. 비록 동그라미는 그 과정에서 아주 심각한 내상을 입을지라도. 그것은 애써 굳이 감추지 않아도 결코 드러나지 않지. 동그라미는 어차피 동그라미일 뿐인걸.

어차피 찌그러질 기회조차 갖지 못한 완벽한 삼백육십 도의 동그라미. 그러나 이것이 완벽한 건 오직 외부에서 조망할 때뿐. 내부가 얼마나 썩어문드러졌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래. 진실을 실토하자면 안에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야. 정말로는 그 안엔 아주 시커먼 독이 있거든. 질감도 형체도 온도도 색채도 없지만 스스로를 질식시키는 데에는 꽤나 쓸 만한 그런 독이.

이것은 독을 이 차원 속에 가득 채우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서 마치 구름과도 같이 투명한 상태가 되어버린 동그라미의 일대기. 일대기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 이야기도 언젠가는 종말을 맞겠지. 이미 온전히 숨을 쉴 수가 없어서 그만큼 가파르고 가파르게 굴러떨어질 뿐인 창공 위의 새들처럼. 구름을 점점 더 닮아갈 뿐이겠지.


구름이 부단히도 와해돼서 하늘을 그득히 매운 그런 하늘을 본 적이 있니. 그 하늘은 마치 잿빛 도화지 같아서 거기엔 무엇이건 그릴 수 있을 것만 같지. 그림자도 없고 응달도 없어서 꼭 끝도 시작도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지. 그렇게라도 꿈을 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삶을 알고 있니.

그래. 진실을 고백하자면 모든 순간에 운이 나빴던 건 아니었어. 간혹 나와 닮은 생김새의 정다각형들을 만난 적도 없지는 않지. 아주 드물게지만 분명 그런 이들이 있었어. 하지만 그들을 붙잡기에는 나는 너무도 소름끼치도록 삼백육십 도인 동그라미. 마주볼 모서리 따위는 없었지. 그리고 그들에게는 모두 제각각의 비탈길이 있었고. 내가 가닿을 수 없는 축의 방향으로 옮겨가며 가파르게 멀어지고야 말더군.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그들이 나와 같아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 이토록 모진 세계에서도 차마 찌그러질 수 없었던 그들의 내면의 빛이 지켜지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뿐. 모서리가 둥글어지는 것은 과연 축복이 아닌 저주지. 첨예한 예각과 어둠에 가려진 요각을 지닌 자들만이 살아남기 더 용이한 이 미쳐버린 비탈길의 아포칼립스에서는. 하지만 그럼에도. 어쩌면 우리의 차원에도 우리를 마주보는 바람이 불어. 중력에 조금이나마 제동을 걸 수만 있다면. 추락이 아닌 상승을. 일직선에서 벗어난 함수의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면.

그런 꿈을 꾸면서도 계속해서 굴러떨어지고 굴러떨어지는 이것은 그저 동그라미의 아포칼립스. 연민 같은 건 필요 없어. 어차피 그런 건 이 차원의 세계에는 존재할 수 없거든. 하지만 엑스 축과 와이 축 사이에도 감정이라는 것이 정말로 단 한 가지쯤은 비집고 들어올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희망으로 정의될 수 있는 무언가였으면 좋겠다. 그를 허락하지 않았던 모든 공리의 한계를 산산히 부숴도 괜찮으니까.

단지 그런 꿈을 꾸는 중이겠지.

그래. 그렇게 언젠가는 감아져 있던 하나의 차원이 최초로 그 눈꺼풀을 뜨게 되겠지. 비록 목도할 수 있는 것이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세계에서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