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의 편지] epilogos
회신.
사 년 전 나는 정신과 처방약을 처음 복용하기 시작하며 거의 날마다 글을 썼다. 그리고 이 년 전 약을 끊은 이후로 그 글들을 다시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이 이야기들의 뒷이야기를 이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쩌면 충동 이상의 갈망이었다. 사 년 전 썼던 그 글들은 당시에 내가 느꼈던 감정들의 분신과도 같았다는 측면에서는 일기였지만 언젠가 미래의 내가 그걸 받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신인의 존재를 상정했다는 측면에서는 편지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이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그 스스로 주체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더는 약을 복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빼놓고 보면 여전히 그 편지를 쓰던 그 계절의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으므로. 세상에 자기자신에게 회신을 쓰는 경우는 없다. 기억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은 채로는.
따라서 그 그림자의 환영들은 모두 추신이라는 첫머리를 달게 되었다. 어떻게 해도 지워지지 않는 꼬리표. 일종의 주홍글씨처럼.
그리고 그로부터 이 년이라는 시간이 다시 흘렀다. 이 년 전 여름으로부터 비롯됐었던 편지는 사 년 전 여름으로부터 도달한 것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열일곱 편의 추신이 쌓였고 그때의 일기도 어느덧 마지막 장에 다다랐다. 이제야말로 닫아야 할 때가 온 것일까. 확신과 희망은 아직도 요원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비로소 사 년 전의 나와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나아가야 할 길의 방향도 구원의 행방도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한 발자국 정도는 떠나온 건지도. 적어도 이렇게 회신이라는 첫머리를 쓸 수 있게 되었을 정도로는.
그동안 추신을 덧붙여 쓰기 위해 그 일기의 일부를 옮겨 적어오면서 내가 반드시 인정해야만 했던 것들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전하며 이 여정을 마치고자 한다.
먼저 일기 내용의 전반에 걸쳐 그놈의 텃밭에 대한 내 집착이 실로 무시무시했다는 것. 그러나 이것은 초반에 주를 이루던 자해행위의 묘사가 후반부로 갈수록 텃밭 얘기에 밀려 점차 비중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참작되는 부분이 있었다. 왜 그토록 그놈의 방울토마토와 그놈의 고구마와 지렁이에 집착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식물은 자해를 하지 않으니까. 동물들. 특히 감정이 발달한 동물일수록 스스로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본능은 더 강해진다. 꼬리를 물어뜯는 개. 시멘트 벽에 머리를 찧는 불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자살을 선택하는 돌고래. 그리고 사람. 감정이라는 것은 양날의 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여운 만큼 위태롭다. 그러나 식물에게는 그 칼이 없다. 식물들은 언제나 오로지 살고자 한다. 빛이 필요하면 태양을 향하고 물이 필요하면 뿌리를 뻗는다. 이 매커니즘은 너무도 단순하고 명료해서 여기엔 어떤 지성이나 지혜도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그 텃밭을 가꾸며 착실히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세상에 감정만이 의지를 지니는 것이 아님을. 감정이 섞이지 않은 의지라는 것은 머나먼 관점에서 보면 무의미한 것일지라도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 고귀한 것임을.
그해 여름의 텃밭은 실제로도 엄청난 생명력과 수확량을 기록했다. 그 조그만 텃밭에서 어떻게 방울토마토가 그렇게 많이 열렸냐고 보는 사람들마다 놀랄 정도였다. 과연 문전옥답인가. 아니면 내가 나에게 쏟아부었어야 했을 의지마저 그들에게 다 내주었기 때문이었을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방울토마토들이 그 많던 열매를 모두 잃고서 천천히 마르고 시들어 마침내 흙의 색깔과 가까워졌던 그해 겨울을 끝으로. 내 자해행위는 완전히 멈추게 되었다.
여기서 이대로 이야기를 마쳐도 나쁘지 않겠지만 아쉽게도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다. 내가 가장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그러나 결국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음을 결코 모를 수는 없었던 것. 내가 이 진실을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발악을 했는지. 나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는 그 감정들의 연원을 직시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얼마나 유린하고 호도했는지. 일기에는 이것이 비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음으로써.
사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출생일과 출생신고일 사이의 간극. 그 비극의 도돌이표밖에는 아니었다는 걸. 나는 열일곱 살에 민증을 만들러 동사무소에 갔던 날 그 숫자들의 간극을 처음 두 눈으로 확인했다.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듣던 얘기였으니까. 아무것도 아닌 아라비아 숫자. 그럼에도 하필이면 그런 날 그것을 보게 된 것에 심장이 조금은 무너졌다. 그리고 하필이면 담당 공무원은 나에게만 유달리 친절했다. 그날 민증 발급을 위해서 온 아이들 중에 혼자 온 아이는 나밖에 없었고 나는 이것도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여기려고 했었다. 우리나라에 불행하게 자란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른 날이었으면 그런 애가 나 말고도 더 있었을 거라고. 하필이면 오늘만 나 혼자인 것뿐이라고. 그러니까 이 역시도 새삼스럽지 않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 공무원이 기어코 나에게만 지나치게 친절해서. 또 하필이면 내 앞 순번의 애도 뒷 순번의 애도 부모랑 같이 와서. 그리고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도 그 공무원과 그 애들과 그 애들의 부모가 자꾸만 내 안색을 살피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심장이 조금은 더 무너졌다.
그날 그들의 연민은 정말로 따뜻한 온정으로 인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로 인해서 앞으로 내 삶이 결코 더 순탄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단지 그런 것이었다. 단지. 고작 여기서부터 촉발된 뇌관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향후 십 년도 넘게 나를 집어삼킨 채 뱉어내지 않으리라는 것만은. 그때는 정말로 몰랐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침전하는 나를 끄집어내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불러내서 내 눈앞에 세워둬야만 했다. 그렇게 직면하고 직시하고 증거를 남기고. 그 일말의 증거들로 말미암아 온몸을 폭발시키려는 감정들을 아주 잠깐이나마 누그러뜨리고. 그 누그러짐으로 말미암아 아주 약간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기억을 되새기고. 그렇게 조금은. 과거를 과거로 보도록. 괴물이나 악어의 주둥이가 아닌. 그저 과거일 뿐인 것으로 보도록. 그렇게나마 나를 다독여야 했던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선언하고자 한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그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힐난하거나 단죄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늙었고 또 너무 지쳤다. 다만 나는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그 여름과 그 이전의 기억들과 그 최초의 간극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 그 무엇보다도 자명했기에. 단지 조금이나마 그림자 밖에서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좀 친 것뿐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것처럼. 그 정도의 조촐한 원동력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내일의 내가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도록 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일조한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뿌리를 뻗고 싶도록 만든다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고귀함을 져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이 나 스스로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도록 용인하는 삶의 방식이기에. 나는 당연하게도 살아야 하기에. 설령 모든 필연이 나를 져버렸다고 할지라도. 그럼에도 나만은 당연한 듯이.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기에.
알고 있는가. 추신이 그저 꼬리표라면 회신은 믿음의 표식이다. 회신의 신 자는 믿을 신 자를 쓴다. 믿음을 내어줄 수 없는 상대에게는 회신을 쓸 수 없다. 나는 그간 추신들을 쓰면서 꽤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 많은 이야기가 심장 한 켠에서 득실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이제 조금은 믿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 정도를 들일 수 있을 만큼은 비워진 것 같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따라서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믿지 못했던 단 한 사람. 가장 죽음 가까이에 도달했다가 결국은 다시 살아서 돌아왔던 그때의 나에게 이 회신을 바친다. 후회를 하겠다면 죽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말고. 텃밭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라. 그리고 차마 눈을 뜨고 싶지 않게 만드는 진실이 있다면 조금은 의탁하라. 정 혼자인 것 같다면. 이 회신을 쓰는 오늘의 나에게라도. 미래가 존재하지 않을 것을 믿었으나 그 믿음에 스스로 배반당한 지금 이 순간의 그늘에게라도.
이 밤이 지나서 해가 뜨면 그림자와 그늘은 다시 하나가 될 거고. 그러면 너는 다시 다음의 이야기를 쓰러 갈 것이다. 꼭 언어가 없더라도. 많은 말이 없더라도. 단지 숨을 쉰다는 것만으도. 그 이야기는 그렇게 쓰여질 것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믿도록 하자.
사 년 후 겨울로부터.
일전의 편지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