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숨결처럼

[일전의 편지] 이야기 열일곱

by 온율

그때 번개가 쳤다. 나는 짧게 밝아졌다 다시 어두워지는 텃밭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천둥이 울리기를 기다렸어.


흙이 하는 말을 믿지 않고서는 줄기가 꺾인 방울토마토들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기라는 걸 나는 이미 배우고 말았던 거야.

죽고 싶도록 고통스럽더라도 그 고통의 끝에서 뿌리를 내리고 열매만은 살리라고. 그렇게 열매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나서 삶을 갈무리하라고. 그래야만 한다고.

그리고 불가능하더라도. 내년에도 꽃을 피울 꿈을 꾸라고. 오직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만 모서리를 세우면서.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안개를 집어삼킨다.


사 년 전 여름으로부터.


새 우는 소리가 들린다. 며칠 간 안개와 수증기만 가득하던 올해의 첫 장마가 마침내 머금었던 빗방울을 다 토해내고 푸른 하늘을 돌려주며 물러난다.


아침이 되고 창문 밖으로 푸른 빛이 어른거리는 게 보였어. 조금 더 꾸물거리며 부족한 잠을 채우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결국은 곧장 일어나 텃밭이 무사한지 보러 갈 수밖에 없었다. 몇 줄기가 더 꺾여있더라도 상심하지 말자는 각오까지 하고서.

그런데 놀랍게도 방울토마토들은 모두 더 싱그럽게 살아난 것 같았어. 물방울들이 맺힌 작은 열매까지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서 이 밤을 어떻게 버텨냈던 걸까. 심지어 흙에 새로 심었던 줄기들마저도 원래 그곳에서 자란 줄기였던 듯 생기를 머금고 있었어. 뿌리가 없던 곳에서 뿌리를 내려야만 하는 넝쿨에게 가장 필요한 건 빗물로 적셔진 부드러운 흙이라는 걸 내게 다시 한 번 가르쳐주기라도 하고 싶었던 것처럼.


사 년 전 여름으로부터.


그리고 아무도 슬프지 않은 하루가 이렇게 다시 시작된다.

장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 짧은 단막극 같은 여유로움이 지나면 언제건 다시 세찬 비를 뿌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푸른 하늘을 되찾았으니까. 그리고 흐린 하늘 속에서도 자라나는 것들이 있으니까. 괜찮다.

그러니까 나도 오늘만큼은 한 뼘쯤은 더 자라도 꺾이지 않고서 이 시간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아.


어제도 그랬듯이 오늘과 내일에도 우리는 다시 살아가. 진심으로 사라질 수 있는 단 한 줌의 흙을 찾기 위해서라도.


사 년 전 여름으로부터.


추신.


인간을 믿었던 것을 후회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살지 못했을 삶이었으니까.

나는 진심으로 내가 항상 운이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운이 나쁘게 태어났던 것치고는 오히려 좋은 편이었지. 살아가면서 아팠던 만큼은 채워졌던 것들이 분명 있었다. 타인의 웃음에 공명하는 법을 배우고. 비록 나는 그와 같이 웃을 수 없었을지라도. 그런 햇살을 닮은 웃음이 세상에 있기도 함을 배우고. 맑은 마음이 눈빛으로 드러나는 사람을 티끌 한 점 없이 좋아하게 되고. 비록 내 마음은 오물투성이일지라도. 나와는 다른 모양의 마음을 부여받은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기도 하는 세상임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처음 만난 세계에는 없었던 빛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어 죽는 날까지도 뒤집어쓰고 있을 것만 같았던 얇디얇은 허물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허락한 이가 신이라면 그렇게 믿어버려도 좋다고 여기기도 했을 만큼. 그래서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였던가.

그러나 심장에 한 번 박힌 가시는 그 심장을 완전히 도려내기 전까지는 없앨 수가 없는 것처럼. 타인의 사소한 낱말. 그 낱말과 낱말들이 교차하는 사소한 문장. 그 문장을 발설하는 사소한 낯빛과 몸짓. 그런 것들에 불현듯 세계 전체가 무너져내리는 순간들이 있다. 트리거는 언제나 찰나에 발동하고 그 찰나에만큼은 그것만이 영원하다. 이제는 좀 무뎌지기도 한 게 아닐까 나 스스로를 과신하는 바로 그 틈을 노려서 화살처럼 비집고 들어오는 그의 이름을 나는 결단코 먼저 호명한 적이 없다. 억지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다. 구태여 끌어들인 것이 아니다. 그런 노력이 없이도 어차피 그는 반드시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망막에 무언가를 뒤집어씌운다.

그러면 다시 눈물이 흐른다. 내 자아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의 과녁이 된다.

신도 무엇도 아닌 그에게 트라우마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은 누구였을까. 누구였건 간에 그는 저주를 좀 받아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아브락사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프로메테우스는 오늘도 오늘의 태양 앞에 부활한다. 그 태양의 발광으로 녹아내리는 것은 깃털이라곤 죄다 뽑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또다른 신. 그의 이름은 이카루스였던가.

아니지. 이카루스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다만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신과도 딱히 다를 바가 없지.

나는 오늘도 애먼 독수리의 부리에 심장이 쪼여 아무도 없는 곳에서 서럽게 울었다. 그 무엇에게라도 의탁을 하고 싶어 홀로 나지막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다가 그 가삿말의 낱말과 낱말들에 관통당해 다시 울었다. 이 트리거의 스위치는 뇌보다 더 깊숙한 곳에 박혀 있다. 그것이 눌리는 시점을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 아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언제나 내 몸이 직접 치르니 그것이 곧 눈물이다. 놀랍지 않다. 단지 어쩌지 못하는 것이 서러울 뿐이다.

그리고 그 노래의 마지막 소절이 끝났을 때. 나는 한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하고서 재빠르게 눈물만을 닦아내는 나를 보았다. 그 다음 순간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밖으로 나섰고. 그 다음 순간엔 늘 그렇듯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잠시 응시하다가. 또 그 다음 순간엔 그들 사이로 휘영휘영 섞여들어 나 역시도 뭔가 바쁘게 움직여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발을 맞춰 걸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의미하게 켜진 스위치를 무심히 꺼버리듯 그렇게 가뿐히 전환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조금은 숨이 덜 막혔을까.


여전히 멀쩡한 척을 하는 데에 서투르고. 서투른 기색을 감추는 데에도 서투른 삶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세상의 속도에 발을 맞춰 걸어야만 하는. 그리고 다시 인간을 믿어야만 하는. 그런 삶이다. 이 믿음에는 언제나 명분 이상의 당위가 있었다. 내 자아를 다소 어둡고 비좁은 곳에 쑤셔박아둔다고 해도 그런대로 용서될 법한 당위. 어쩔 수 없다라는.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는 당위. 하지만 이것이 정작 나 스스로를 불신하게 만드는 족쇄밖에는 되지 못한다는 걸 직시하게 되었을 때. 나는 어쩌면 또다시 탈피를 해야 할 명분이 생겨버리고야 마는 것이다. 한 꺼풀을 한 번 더 벗고서. 세계를 한 번 더 허물고서. 천 년을 사는 불사조까지는 못 되더라도. 어쨌거나 숨을 한 번 더 들이쉴 수 있도록. 잿더미를 밟고 올라서 눈이 부시게 차오르는 햇무리를 한 번 더 올려다보고서. 마치 처음인 듯. 다쳐본 적조차 없는 날개인 듯. 그렇게 날아오를 수 있도록.

막다른 장에서 그 너머의 장막을 열어젖히는 기적. 첫 숨결처럼 맞이하는 그런 기적을. 극복도 회복도 아닌 단지 삶이 계속된다는 그 반복의 개연성을. 나는 결코 잃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너만은 이것을 믿어다오. 내일의 나인 너만은. 부디 오늘도 울고 있는 나라는 사람을.

믿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