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효소, 몸의 구조, 그리고 여성이 ‘버티는’ 이유에 대하여
술을 마시는 문제는 오랫동안 성격과 의지의 문제로 다뤄져 왔다.
술을 잘 마시면 사회성이 좋다고 말하고,
술을 못 마시면 예민하거나 약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 모든 판단은 몸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알코올은 기분이나 태도를 거치지 않는다.
몸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화학반응의 문제다.
알코올(에탄올)은 체내에서 두 단계의 산화 과정을 거친다.
첫 단계에서 에탄올은 아세트알데히드로 바뀐다.
이 반응을 촉매 하는 것은 "알코올 탈수소효소(ADH)"다.
ADH는 하나의 효소가 아니라,
ADH1 A, ADH1 B, ADH1 C 등 여러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효소군이다.
이 유전자 조합에 따라 에탄올이 아세트알데히드로 바뀌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문제는 두 번째 단계다.
아세트알데히드는 에탄올보다 훨씬 강한 독성 물질이다.
발암성, 혈관 확장, 심박수 증가, 두통, 메스꺼움, 불안 반응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술이 안 받는다”는 느낌의 대부분은
에탄올이 아니라 아세트알데히드 축적에 대한 신체의 경고다.
이 독을 처리하는 것이 "알데히드 탈수소효소 2형(ALDH2)"이고,
이는 ALDH2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다.
ALDH2 유전자에 비활성 변이가 있는 경우,
아세트알데히드는 빠르게 아세트산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몸에 쌓인다.
중요한 사실 하나.
ALDH2 비활성 변이는 유전학적으로는 열성이지만,
표현형은 사실상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즉, 한 개의 비활성 대립유전자만 있어도
얼굴 홍조, 두근거림, 불쾌 반응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술에 대한 반응은 단일 유전자로 결정되지 않는다.
에탄올을 아세트알데히드로 바꾸는 속도(ADH 계열 유전자)와
아세트알데히드를 처리하는 능력(ALDH2 유전자)이 함께 작용한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술이 잘 받는 몸”이 되려면
에탄올을 지나치게 빠르게 독으로 바꾸지 않으면서
그 독을 충분히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이 두 조건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이건 훈련의 결과가 아니라 확률의 결과다.
여기에 성별과 체성분의 문제가 더해진다.
알코올은 수용성 물질이다.
즉, 체내에서 주로 근육과 체수분이 많은 공간에 분포한다.
지방 조직에는 상대적으로 덜 분포한다.
평균적으로 남성은 근육량과 체수분 비율이 더 높고,
여성은 지방 비율이 더 높다.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여성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더 빠르고 높게 올라가는 이유다.
게다가 여성은 평균적으로 위 점막에서 알코올을 일부 분해하는 위 ADH 활성이 더 낮다.
그 결과, 더 많은 에탄올이 그대로 간으로 유입된다.
즉, 여성은 구조적으로 분포 공간은 더 작고
초기 분해는 더 적으며 같은 조건에서도 더 높은 농도의 알코올에 노출된다.
이건 체력이나 경험의 문제가 아니다.
몸의 구조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는 이런 이미지가 있다.
“요즘은 여자들이 술을 더 잘 마신다.”
“술꾼도시녀 같은 이미지.”
이 관념은 생물학에서 나온 게 아니다.
순수하게 사회적 조건에서 만들어진 착시다.
여성이 술에 취했을 때 감당해야 하는 위험은 남성과 전혀 다르다.
취한 이후의 이동, 귀가, 시선, 그리고 성추행·성폭력·각종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까지.
여성에게 술에 취한다는 것은 불쾌함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의 문제다.
이 조건 속에서 많은 여성들은 몸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하는 법을 배운다.
어지러워도, 메스꺼워도, 판단력이 흐려져도
“아직 괜찮은 척”을 한다.
이건 체질이 좋아서가 아니라 취약해질 수 없기 때문에 버티는 것이다.
사회는 이 장면을 잘못 해석해 왔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또렷한 척하고,
혼자 귀가할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모습을 보고 “세다”, “주량이 좋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강함이 아니라 지속된 경계 상태다.
더 잔인한 지점은 여기다.
여성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겪는 범죄는 가해자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여전히 피해자에게 “왜 그렇게 마셨느냐”를 묻는다.
이 질문이 반복되는 한, 여성은 취할 수 없다.
그래서 버틴다.
결국 술에 대한 대부분의 도덕적 판단은 틀렸다.
술을 못 마시는 건 약함이 아니고, 술을 잘 마시는 건 우월함이 아니다.
그건 유전자, 효소 활성, 체성분, 그리고 사회적 위험이 만들어낸 결과다.
술을 의지의 문제로 남겨두는 사회는 과학을 무시하고,
위험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특히 여성에게 침착함과 인내를 강요해 왔다.
이제는 말해야 한다.
술은 선택이기 전에 조건이고, 그 조건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사실은 술보다 더 취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오늘은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아서 술에 대한 글을 써봤습니다.
언제 말씀 드린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화학과 그리고 유기합성으로 석사를 수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