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먹는다

살기 위해, 버티기 위해

by 박온유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먼저 하루를 먹는다.

물도 아니고, 음식도 아닌 것들로.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약들을 말없이 바라본다.

이게 오늘의 나다.

이게 오늘을 통과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누군가는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스트레칭으로 몸을 깨운다.


나는 약으로 나를 설득한다.

“오늘은 버텨도 된다”라고.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요즘은 다들 힘들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단어로 묶기에는

우리의 하루는 난이도가 다르다.


정상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하루가

평지 위의 걷기라면,

나의 하루는

보이지 않는 경사 위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넘어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온 힘을 쓰고 있다.


이 약들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나를 특별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다만,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경계선에 붙들어 놓는다.


약을 먹는다는 건

고통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라

고통을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제 괜찮아졌네”라고 말한다.

괜찮아진 게 아니라

그냥 살 수 있게 된 것뿐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만약 이 약들이 없다면

나는 지금 어디쯤에 있을까.


아마 그 질문에는

답이 없다.

그래서 나는 묻지 않는다.


대신 오늘을 산다.

아주 조심스럽게.


누군가에게 이 사진은

과장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약에 의존하는 나약함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건 의존이 아니라 협력이라는 걸.


몸과 마음이

서로를 배신하지 않도록 맺은

불완전한 계약.


나는 정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정상이라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이미 알아버렸으니까.


다만,

내가 가진 조건 안에서

하루를 끝까지 살고 싶다.


오늘도 약을 먹고

오늘을 먹는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저의 페이스 북에는 수많은 약 사진들이 있어요.

격주로 정신병원을 다녀요. 23년째.

약이 없으면 전 하루도 살지 못해요.

1년 반 전쯤 주위의 시선 때문에 약을 잠시 중단한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공황장애로 저는 다급히 책상 한구석에 있던 약을

정량보다 더 많이 먹었지요. 약이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고

저는 숨이 막혀 들어가는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책상 아래로 숨어들었고 이후 기억은 없어요.

그런데 퇴근 지문도 찍고 운전을 해서 가던 도중 트럭을 추돌했나 봐요.

다음 날 아침 출근알람에 일어나 출근을 하려니 어디 가려고 하는 거냐고 묻더라고요.

전 당연히 회사가지 어딜 가 라고 했는데 글쎄 제가 사고가 났다는 거예요.

믿을 수가 없어 나가 봤는데 차가 없더라고요.

택시를 타고 출근을 하고 경위를 알아보고 폐차장에 가보니 보닛이 거의 머리까지 뚫고 들어왔더군요.

저는 제가 살았다는 안도보다는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았다는 것에 정말 너무 다행이라 울었어요.

그리고 저는 다시 약을 먹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