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된 아이들

스커트와 소라빵, 그리고 명동의 밤

by 박온유

해가 지면 우리는 유령이 되었다.

수배령이 떨어지거나 검문이 심해지면, 기숙사나 자취방은 이미 우리 집이 아니었다.

형사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험한 곳일 뿐.


우리의 침실은 학생회관 동아리방, 혹은 불 꺼진 강의실이었다.

딱딱한 책상을 붙여 침대를 만들고, 박스를 깔고 이불 대신 신문지를 덮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코끝을 찌르던 잉크 냄새.

신문지 몇 장이 주는 온기는 초라했지만,

그 얇은 종이 쪼가리라도 덮어야만 한기를 견딜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새우잠을 잤다.


하지만 학교 밖을 나설 때는 완벽한 연기가 필요했다.

교문 앞에는 언제나 날카로운 눈초리의 사복 경찰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운동권스럽게' 생긴 학생들을 귀신같이 잡아냈다.

청바지, 운동화, 그리고 피곤에 쩐 얼굴.

그래서 나는 항상 '변장'을 했다. 나는 가방 깊숙한 곳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짧은 스커트, 하늘거리는 원피스, 그리고 굽 있는 샌들.

화장실에 들어가 흙먼지 묻은 청바지를 벗어던지고, 최대한 온몸을 닦는다.

샴푸는 없어도 머리는 꼭 씻어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스민 최루가스의 느낌을 지우고는 붉은 립스틱을 발랐다.

싸구려 향수도 뿌렸다.

머리도 일부러 찰랑거리게 풀었다.


거울 속의 나는 낯설었다.

조금 전까지 돌을 던지던 투사는 사라지고, 미팅 나가러 가는 철없는 여대생 하나가 서 있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위장이었다.

경찰들은 짧은 치마를 입고 또각또각 걸어 나오는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이 내 다리를 훑고 지나갈 때 느꼈던 그 모멸감과 안도감.

그 이중적인 감정이 나를 괴롭혔다.

발이 부르트도록 샌들을 신고 도망치던 날들, 내 발목은 늘 욱신거렸다.


우리가 숨어들 수 있는 마지막 성역(聖域), 명동성당.

경찰 병력이 함부로 진입하지 못하는 그곳은 쫓기는 자들의 해방구였다.

성당 앞 계단에 앉아 우리는 '소라빵'을 나눠 먹었다.

어디서 누가 공수해 온 건지는 몰라도 달콤하고 고소한 그 빵.

최루탄 가스에 절여진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그 부드러운 빵 맛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그것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위로였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그림자들이 또 있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우리를 숨겨 주시던 어느 상가, 주택의 아주머니들.

대규모 시위가 끝나가는 순간은 본대가 모두 곳곳으로 흩어져 숨어들었을 때다.

애타게 철문을 두드리면 그분들은 곧잘 문을 열어 주셨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우리를 씻게 해 주셨고 잠시라도 분위기가 잦아들면 나가라고

말씀해 주시던 따스한 마음.

그분들은 우리를 종종 "학생들"이라 부르지 않고 "내 새끼들"이라고 불렀다.


"이거 먹고 해. 밥은 굶지 말고."


아주머니들은 가게 구석 화장실이나 집 구석진 곳에 우리를 숨겨주기도 했고,

집에 있는 음식이나 음료를 건네주기도 했다.

그분들은 알았다. 우리가 왜 집에 못 가는지, 왜 신문지를 덮고 자는지.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당신들의 아들딸이, 바로 당신들의 세상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그분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계셨다.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도망치던 나, 소라빵 하나에 울고 웃던 동지들,

그리고 묵묵히 망을 봐주던 어머니들의 거친 손.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시대가 드리운 그림자 속에 숨어 살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만큼은

가장 따뜻한 '빛'이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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