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의 낡은 운동화와 소주 한 병
1997년 11월, 공기가 달라졌다. 단순히 날씨 탓이 아니었다.
캠퍼스에는 을씨년스러운 냉기가 돌았다.
뉴스에서는 '국가 부도'라는 낯선 단어가 앵무새처럼 반복됐고,
학교 앞 식당들은 하나둘 셔터를 내렸다.
"야, 누구네 아버지가 부도나서 야반도주했대." 수군거림이 괴담처럼 강의실을 떠돌았다.
하지만 나는 애써 귀를 막았다.
내 코앞의 비커를 닦는 일만으로도 벅찼으니까.
그렇게 시간을 흘러 이듬해 어느 날이었다. 가장 아끼던 후배, 정우가 안 보인 지 일주일째였다.
녀석은 화학과에서 제일 눈이 맑은 놈이었다.
"선배처럼 되는 게 꿈이에요"라며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허울만 남은 노래패 후배.
가난했지만, 눈빛만큼은 언제나 형형하게 빛나던 아이.
그 정우가 기말고사를 앞두고 증발했다. 자취방을 찾아가 봤지만,
주인아줌마는 혀를 차며 이미 방을 뺐다고 했다.
그날 밤, 실험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모자를 푹 눌러쓴 정우였다.
일주일 만에 본 녀석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었다.
입고 있는 점퍼는 얇았고, 무엇보다 내 눈을 피했다.
"선배... 저 내려가요." "어디로?" "울산이요.
아는 형님이 조선소 자리 하나 났다고... 당장 내일 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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