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합성 실험실의 독기, 그리고 도피처가 된 조감도
어느새 밖에서 나는 '잘 나가는 IT 프리랜서'였지만,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다시 '죄인'이 되었다.
부모님에게 내가 번 돈이나 독학으로 일궈낸 포토샵 실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분들의 머릿속엔 오직 견고한 성처럼 버티고 있는 하나의 문장뿐이었다.
"약대 편입해라. 공부해서 번듯한 전문직이 돼야지, 그깟 컴퓨터 나부랭이가 밥 먹여주냐."
IMF로 나라가 떠들썩해도 부모님의 그 지독한 학구열,
혹은 자식을 향한 허영심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이 불안할수록 '사 자' 들어가는 전문직에 대한 그분들의 집착은 더 단단해질 뿐이었다.
아르바이트와 투쟁, 그리고 방황 끝에 간신히 학부를 마친 나는 결국 부모님의 등쌀에 떠밀리듯
석사 과정을 위해 '유기합성(Organic Synthesis)' 연구실로 들어가야 했다.
화학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위험하고, 노동 강도가 세기로 악명 높은 그곳.
순수한 학문적 열정이 없는 이에게 유기합성 실험실은 그 자체로 거대한 지옥이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코를 찌르는 독한 솔벤트 냄새를 맡으며 반응을 걸고,
원하는 물질을 얻기 위해 끝도 없이 컬럼을 내리고, 냉정한 결과를 분석해야 했다.
내 젊음은 산화되어 갔고,
머리카락은 푸석해졌으며 피부는 약품 독에 뒤집어졌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건,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억지로 연기해야 한다는 자괴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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