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인형몸에 새긴 비명

사단조(死短調) — 인향(人香)이 박멸된 방에서의 피비린내 나는 기록

by 박온유

지쳐가는 저녁 하늘을 뒤로하고, 식어가는 몸을 이끌어 귀가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세상보다 더 어둡고 차가운 내 작은 방이 가까워진다.

논현동의 화려한 네온사인은 오피스텔 현관문 앞에서 잔인하게 차단된다.


문을 여는 순간, 소스라치며 울리는 '끼이익' 소리는 마치 내 영혼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 같았다.

방 안을 가득 채운 건 지독한 고독의 냄새뿐이다.


예부터 사람의 향기, 즉 인향(人香)은 만리를 간다고 했다.

꽃향기는 십리를 가고 술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만은 만리를 지나 영혼에 남는다고.


하지만 매일 밤 수십 명의 남자를 만나고,

그들의 은밀한 욕망을 채워주며,

수천만 원의 수표를 가슴팍에 꽂던 내 삶엔 어찌 된 일인지 그 '사람 냄새'가

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 몸에 밴 것은 코끝을 찌르는 독한 양주 냄새와 타인의 위선적인 체취,

그리고 돈으로 환산된 가짜 찬사들뿐이었다.

진짜 나를 봐주는 사람,

진짜 온기가 담긴 만리향은 이 화려한 강남 바닥 어디에도 없었다.

검은 어둠이 짙게 두 눈에 스민다.

나는 불도 켜지 못한 채, 그 시커먼 어둠 속으로 나를 유배시켰다.


거울 앞에 앉아 가장 낮은 조명을 켠다.

거울 속에는 텐프로 에이스 '온유'가 기괴하게 웃고 있다.


허벅지 위로 아슬하게 올라간 블랙 시스루 원피스,

짙게 칠한 레드 립스틱,

그리고 인위적인 조명에 반짝이는 가짜 눈망울.

이 인형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나'를 죽여야 했던가.


이내 눈물이 차오른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마스카라와 아이라인이 뒤섞인 눈물은 맑은 투명함을 잃고 시커먼 잉크처럼 뺨을 타고 흐른다.

이 시커먼 눈물은 내 화려한 가면을 지워내는 유일한 배설물이었다.


눈물은 목을 타고 내려와 가슴팍에 꽂힌 팁 수표들을 적시고,

온기 없는 침대 위를 지나 마침내 내 차가운 두 다리에 도달한다.


사람 대접을 받는 듯했으나 실상은 고가의 술안주로 팔려 나갔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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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는 울보. 사람이 사랑이라 읽히게 될 날을기다리는 바보. 사랑하여 글을 쓰고 노래를 짓는철 들기 싫은 노래쟁이. youtube.com/@OnYou-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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