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감옥, 폐쇄병동

영혼이 멈춰버린 시간, 그곳에 남겨진 하얀 고립

by 박온유

2005년의 그 새벽,

거울 속의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화려한 옷을 입은 기괴한 시체였다.

나는 늘 쓰던 금속 날을 집어 들었고,

파르르 떨리는 나의 가느다란 목줄기에 가져다 댔다.


지그시 힘을 주어 그은 단 한 번의 금.

뜨겁게 솟구친 선홍빛 '레'가 내 쇄골을 타고,

텐프로의 화려한 원피스를 적시며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다음은? 전혀 기억이 없다.


내가 바닥에 쓰러지며 어떤 소리를 냈는지,

오피스텔 복도로 기어 나간건지, 누가 신고를 했는지,

구급차에 실려 가며 어떤 비명을 지르거나 어떤 꿈을 꿨는지...

내 인생의 가장 치명적이었던 그 몇 시간은 필름이 타버린 듯

완벽하게 삭제되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낯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남의 화려한 야경 대신, 시리도록 하얀 형광등 불빛이 내 망막을 찔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은 나를 강제로 살려놓았고,

나는 그 '삭제된 기억'의 끝에서 폐쇄병동이라는 낯선 현실로 던져졌다.


손을 들어 목을 만지려 했지만, 묵직한 거즈와 붕대가 손끝에 걸렸다.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실감이 났다.

내가 필사적으로 숨겨왔던 '화려한 지옥'은 그 기억의 공백 사이에서 낱낱이 해체되어

세상에 발가벗겨졌다.


가장 참혹했던 것은 부모님께 연락이 간 순간이었다.

딸이 유기합성 석사로,

IT 전문가로 당당하게 서울에서 성공한 줄로만 알았던 부모님께 날아든 소식은

'딸이 목을 그었다'는 비보였다.


나를 성전처럼 귀하게 여기라던 엄마는 목에 붕대를 감은 나를 보며 숨도 쉬지 못한 채 무너졌고,

엄격했던 아버지는 벼랑 끝에 선 사람처럼 위태롭게 서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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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는 울보. 사람이 사랑이라 읽히게 될 날을기다리는 바보. 사랑하여 글을 쓰고 노래를 짓는철 들기 싫은 노래쟁이. youtube.com/@OnYou-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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