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따지러 가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늦어버린 연주가 남긴 유언

by 박온유

서울 논현동의 화려한 조명이 꺼진 뒤,

내게 남은 것은 처참한 폐허였다.

명품 가방들을 헐값에 다 내다 팔아도 수천만 원이라는 마이너스 숫자는 요지부동이었고,

내 목에는 그날의 광기를 증명하는 선명한 흉터가 낙인처럼 박혔다.


서른한 살에 무너져 폐쇄병동의 강화 도어 너머로 격리되었던 그 시간 이후,

나는 도망치듯 고향 대구로 내려왔다.


부모님이 계신 대구 집 내 방은 서울 오피스텔보다 훨씬 안정적이었지만,

그 안온함은 나를 서서히 말려 죽이는 늪이었다.

서른둘, 그리고 서른셋.

남들은 인생의 가장 뜨거운 전성기를 통과하며 사회적 지위를 쌓아 올릴 때,

나는 정지된 화면 속에 박제된 채 살았다.


"내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이 빚은 대체 어떻게 갚아야 하나?"

하는 현실적인 공포가 매일 밤 천장에서 쏟아졌고,

나는 지독히 느리게 흐르는 악의적인 시간을 바라보며 그저 썩어가고 있었다.

그 방 안은 나를 보호하는 요람인 동시에,

나를 영원히 사회적 죽음으로 몰아넣는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그 깊은 수렁에서 나를 건져 올린 건 삼촌(가수 박**)이었다.

듀엣 '작은 평화'의 멤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삼촌은

무력감에 젖어 있던 내게 다시 통기타를 쥐여주었다.

여전히 우울증과 공황장애,

수면장애로 하루에도 몇 번씩 독한 약봉지를 털어 넣어야 하는 위태로운 상태였지만,

삼촌은 나를 억지로 밖으로 끌어내 통기타 동호회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노봉(사랑의 노래 봉사대)'을 결성했다.

텐프로의 룸 안에서 술 취한 엘리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부르던 노래가 아니라,

고통의 최전선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위한 위로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암 환자 병동, 요양원, 모자원...


세상에서 가장 낯설고 아픈 곳들이 우리의 무대가 되었다.

여전히 약물 없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기 힘들 만큼 심장이 요동쳤지만,

기타 줄을 짚는 손가락 끝의 통증이 내가 살아있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그곳에서 내가 마주할 죽음들이 내 인생의 궤도를 완전히 바꿔놓을 줄은.


사노봉 활동을 하며 만난 한 언니가 있었다.

암과 싸우면서도 내 노래를 유독 좋아해 주던 사람이었다.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 중에도 내가 기타를 들고 가면

언니는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온유야, 네 노래가 참 좋다. 다음 공연 때 또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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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는 울보. 사람이 사랑이라 읽히게 될 날을기다리는 바보. 사랑하여 글을 쓰고 노래를 짓는철 들기 싫은 노래쟁이. youtube.com/@OnYou-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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