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아무도 보지 않아도 예뻤으면 좋겠는 마음

by 박온유

우리는 왜 그렇게 잘생기고 예뻐 보이고 싶어 질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굳이 카메라를 켜고 각도를 바꾸고, 조명을 확인한다. 남자든 여자든, 젊든 나이가 들었든, 혼자 있을 때조차 말이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사진을 찍으면서까지.


대부분은 이걸 보여지기 위한 욕망이라고 부른다.

관심, 인정, 좋아요.

설명하기 편한 말들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이 마음이 시작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방에서

거울 속의 내가 괜찮아 보이면

그날 하루가 덜 무너지는 경험.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거다.


그건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라기보다,

오늘의 나를 조금이라도 믿어보고 싶은 마음에 가깝다.

“아직 괜찮다”, “완전히 망가지진 않았다”는 확인 하나쯤은 스스로에게 건네고 싶은 마음.


사람은 혼자서 자신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우리는 늘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를 배워왔다.

칭찬받았던 표정, 무시당했던 모습, 사랑받았던 순간의 얼굴들.

그 시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보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라는 말 안에도

이미 수많은 타인의 흔적이 섞여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마음이 거짓은 아니다.

인간이란 애초에 그렇게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존재니까.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은

사실 허영이나 과시보다 먼저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감정에 닿아 있다.

오늘의 내가 너무 흐트러져 있지 않다는 것,

아직 삶에서 밀려나지 않았다는 감각.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올리지 않아도, 저장하지 않아도.

화면 속의 나는 잠시 정돈되어 있고, 빛을 받고 있고,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순간만큼은 현실의 피로와 균열에서 조금 떨어져 설 수 있다.


이건 거짓된 자아라기보다는

아직 포기하지 않은 나의 한 모습이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이런 나로 살아가도 괜찮다”는 가능성을 미리 확인해 보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이 마음을 쉽게 허영이라고 부르는 건

사람을 너무 단순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느껴진다.

우리는 화려해지고 싶어서 애쓰는 게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경우가 훨씬 많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거울 속의 내가 예뻤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건 타인을 속이기 위한 욕망이 아니라

오늘의 나에게 최소한의 신뢰를 남겨두려는 태도다.


보여지기 위함과 나를 위함은

생각보다 분리되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에서 시작된 감각이

시간이 지나 내 안으로 접혀 들어와

나를 지탱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예뻐지고 싶은 게 아니라

예뻐 보이는 나를 통해

오늘을 조금 더 버틸 힘을 얻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아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거울 속의 내가 고개를 끄덕여 준다면

그 하루는 이미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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