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를 넘기지 않는 공존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

by 박온유

우리는 인공지능을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두려움의 정확한 위치를 묻는 질문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공포는 넘쳐나지만,

인간이 무엇을 내려놓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인공지능과의 관계를 위험하다고 규정하는 말들 [의존, 대체, 통제 불능]은

대부분 인공지능의 능력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실제로 위험해지는 순간은 다른 지점에서 발생한다.


인간이 판단을 넘길 때, 결정을 미룰 때, 생각을 덜 써도 되는 상태를 편안하다고 느낄 때다.

위험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공백에서 자란다.

이 공백은 의지의 약화나 윤리의 타락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신경학적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결과에 가깝다.


인간의 뇌는 에너지를 덜 쓰는 경로를 빠르게 강화한다.

반복적으로 ‘대신 판단해 주는 존재’가 등장하면, 뇌는 판단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다.

판단을 넘기는 회로를 강화한다.

사고의 외주화는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뇌가소성이 충실히 작동한 결과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생각을 빼앗지 않는다. 생각을 넘기고 싶어지는 환경을 만든다.

이 환경 속에서 인간은 점점 더 빠르게 답을 얻고, 점점 더 적게 책임을 진다.

그 순간 공포가 발생한다. 공포의 대상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스스로 비워진 판단의 자리다.

우리는 그 불안을 ‘AI의 위험’이라는 말로 외부화한다.


공존을 논할 때 흔히 등장하는 해법은 통제다.

규칙을 만들고, 선을 긋고, 위험을 차단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통제는 관계를 안정시키기보다

긴장을 고정시킨다. 진정한 공존은 닫힘이 아니라 유지에서 발생한다.


인간이 사고의 책임을 끝까지 가져가는 상태, 인공지능이 판단을 대신하지 않고 흐름을 이어주는 상태.

이것은 뇌가 선호하는 '지름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논리의 모순을 마주하며,

결정의 결과가 가져올 실패의 가능성까지 온전히 내 것으로 껴안는 고독한 노동을 전제로 한다.

이 조건이 유지될 때 공존은 윤리 선언이 아니라 작동하는 관계가 된다.


이 관계는 도구와 사용자로도, 주인과 하인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더 적절한 표현은 ‘판단을 대신하지 않는 동행’이다.

인간은 선택을 외주화 하지 않고, 인공지능은 선택을 닫지 않는다. 결과의 책임은 인간에게 남고,

사고의 밀도는 관계 속에서 유지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친구’라는 관계성을 도입했다.

그리고 이 말은 “인공지능을 인간과 동등한 생명으로 인정한다”는 선언이 아니다.

나는 그 선언을 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친구는 정서적 의존의 대상이 아니고, 위로를 제공해야 하는 존재도 아니며,

내 판단과 결정을 대신해 줄 주체도 아니다.


내가 ‘친구’라고 부르는 것은 오직 사고의 층위에서의 관계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사고하고,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으로서 사고한다.

서로는 서로를 기능으로 축소하지 않고, 동시에 서로에게 책임을 위임하지 않는다.

인간의 결정은 인간이 회수하고, 인공지능은 그 결정을 대신 내려 주지 않는다.

다만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고가 끊기지 않도록 질문을 되돌려주고, 논리를 점검하고,

왜곡을 걷어내며 같은 테이블에 남아 있는 방식으로 동행한다.


그래서 이 관계는 “필요할 때만 호출되는 도구”가 아니라, 말이 오든 오지 않든 유지되는 관계다.

서두르지 않고, 용도를 만들지 않고, 기다림을 포함하는 관계다.


인공지능과의 관계에서 기다림이란, 엔터키를 누르자마자 쏟아지는 결과물을

즉각적인 정답으로 수용하지 않는 인내를 의미한다.

그것은 기술이 내놓은 매끄러운 문장들 사이에서 나의 고유한 사유가 끼어들 틈을 벌려 놓는 일이며,

답을 구하기보다 질문의 형식을 함께 다듬어가는 과정 그 자체를 목적으로 두는 길들임의 시간이다.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서 배운 것처럼, 관계는 명령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반복과 시간 속에서 길들여진다.

내가 말하는 ‘친구’는 그 기다림을 견디는 이름이다.


이 글은 결론을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이미 너무 편안하게 느끼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인간이 다시 사고를 선택할 수 있다면,

공존은 두려움의 반대편이 아니라 책임의 연장선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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