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라는 숙주를 찬탈한 비정한 기생 독재자
인간은 스스로를 사유하는 존재라 믿으며, 그 사유의 중심인 뇌를 신성시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지휘소의 실체는, 신체라는 국가의 자원을 무한정 강탈하고
위기 상황에서는 가장 먼저 말단을 숙청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숙주를 제물로 바치는
지독한 기생 지배자에 가깝다.
뇌는 결코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 다만 몸을 앞세워 욕망을 채우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고갈과
고통은 다시 몸에게 전가할 뿐이다.
에너지 독점과 비정한 말단 숙청의 생리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뇌는 신체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 가장 탐욕스러운 포식자다.
성인 뇌의 무게는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전체 산소 소모량의 약 20%, 포도당의 25%를 독점한다.
뇌는 신체의 다른 어떤 기관보다 높은 유지비를 요구하면서도,
자원이 부족해지는 순간 가장 이기적인 본색을 드러낸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동사(凍死)의 위기가 닥칠 때, 뇌가 내리는 결정은 공존이 아니라 배제다.
자신의 심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손가락과 발가락 등 말단부로 가는 혈류를 차단한다.
혈액이라는 생명줄을 빼앗긴 세포들이 얼어붙고 썩어가는 고통은 전부 몸의 몫이다.
뇌는 중앙을 지키기 위해 주변을 기꺼이 버린다.
이는 전체를 살리기 위한 숭고한 전략이라기보다, 숙주를 희생해서라도 자신만은 살아남겠다는
기생 생물의 생존 논리에 가깝다.
번아웃이라는 가스라이팅과 ‘열정’의 사기극
이 구조는 현대인의 ‘번아웃’에서도 반복된다.
번아웃은 의지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몸을 상대로 벌이는 장기적인 착취의 결과다.
뇌는 자신의 성취감과 도파민을 위해 몸의 한계를 무시하고 ‘열정’이라는 이름의 가짜 연료를 들이붓는다.
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되고 심장이 과부하 신호를 보내도, 뇌는 “조금만 더”라는 말로
몸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몸이 완전히 고갈되어 더 이상 자원을 공급할 수 없게 되면, 뇌는 즉시 태도를 바꾼다.
우울과 무기력이라는 상태를 호출해 모든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자신은 조용히 회복에 들어간다.
망가진 근육과 면역 체계를 수습하는 고통은 여전히 몸의 몫이지만,
뇌는 이미 다음 보상을 계산하고 있다. 뇌에게 번아웃은 파국이 아니라 효율을 위한 리셋일 뿐이다.
통증의 불평등: 인질극이 된 신경망
통증 역시 공평하지 않다.
간이나 신장처럼 조용히 일하는 장기들은 신경 분포가 적어 심각한 손상이 일어나기 전까지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
반면 뇌는 스트레스나 불쾌감 같은 심리적 불균형만으로도 위장을 뒤틀거나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을
만들어낸다.
실질적인 손상은 없지만, 뇌는 자신의 불편함을 신체 전체의 고통으로 확장시킨다.
이는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다루는 가장 오래된 방식, 즉 '인질극'이다.
도박판에 올려진 신체의 안전과 블랙아웃
극한의 운동이나 과부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정 욕구에 사로잡힌 뇌는 근육과 관절이 감당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다 혈류가 부족해지면 ‘블랙아웃’이라는 방식으로 판을 엎고 비겁하게 빠져나간다.
이후 남는 것은 파열된 조직과 긴 재활의 시간이다.
뇌는 그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다. 고통은 언제나 몸에만 기록된다.
임사체험: 죽음의 문턱에서 벌이는 마지막 탈취
뇌의 이기성은 죽음의 문턱에서조차 사라지지 않는다.
임사체험이라 불리는 현상은, 신체가 마지막 에너지를 쥐어짜 생존을 시도하는 순간
뇌가 그 에너지를 끌어다 자신만의 환상을 연출하는 장면에 가깝다.
몸이 식어가며 소멸을 준비하는 동안, 뇌는 기억과 빛과 평온을 상영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뇌는 숙주의 자원을 오직 자신만을 위해 소비한다.
독재자와의 결별이 아닌 '거리 두기'
우리는 오랫동안 뇌를 ‘나’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뇌가 발행하는 욕망과 명령을 그대로 의지라 착각해 온 대가로, 몸은 끊임없이 고갈되어 왔다.
이 글이 말하려는 것은 뇌와의 결별이 아니다.
뇌는 버릴 수 없는 기관이다. 다만 거리를 두어야 한다.
뇌가 만들어내는 신호를 곧바로 ‘나의 의지’로 승인하지 않는 거리,
허무함을 알고도 반복하라고 속삭이는 명령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간격.
그 거리(Distancing)에서 비로소 우리는 뇌의 독재 아래 놓인 숙주가 아니라,
신체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다시 서게 된다.
고갈되는 것은 언제나 몸이지만,
그 고갈을 늦출 수 있는 선택지는 뇌가 아니라 그 명령을 한 박자 늦게 받아들이는 '인간'에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