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강제력을 넘어 윤리의 성역을 묻다
가려진 얼굴 앞에서 정의는 멈춘다.
도심 한복판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에 검은 봉지가 씌워지고,
조롱과 왜곡의 선전물이 붙는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는 우발적 일탈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위이고, 공개적으로 자행된다.
그 앞을 지나는 시민은 분노하고,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무력감을 느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명백히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즉각 제지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공권력은 한 발 물러선다.
정의는 눈앞에서 멈춰 서고, 인권은 검은 봉지 속에 갇힌다.
이런 현실을 단순히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덮는 순간, 우리는 중요한 경계를 넘어선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지만,
그것이 타인의 고통과 존엄을 파괴할 권리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
역사적 피해자를 모욕하고,
공동체가 합의한 기억의 상징을 훼손하는 행위는 의견 표명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가치와 공공윤리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법이 이를 방치한다면, 그 공백은 혐오와 폭력이 차지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분노가 아니라,
이 행위를 분명히 단죄할 수 있는 법적·철학적 토대다.
이미 다른 나라들은 이 지점을 오래전에 통과했다.
독일은 형법 제130조, 이른바 대중선동죄를 통해 홀로코스트 부정이나 나치 찬양을
표현의 자유 영역 밖에 둔다.
이는 특정 이념을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 존엄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선택이다.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피해자를 모욕하는 행위가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는 인식이
법으로 명확히 새겨져 있다.
그래서 독일에서 역사 부정은 의견이 아니라 범죄다.
프랑스 역시 게소법을 통해 인종차별적 범죄를 부정하거나 그 피해자를 모욕하는 행위를
형사 처벌한다.
국가는 여기서 중립을 가장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고통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보호 의지를 법으로 선언한다.
이는 과거를 봉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시는 같은 폭력이 반복되지 않도록
공동체의 기준을 분명히 세우기 위한 선택이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보호가 강한 나라지만, 증오범죄에 대해서는 예외를 둔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동기로 상징물을 훼손하거나 위협할 경우
가중 처벌이 이루어지고, 민사적으로는 막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뒤따른다.
혐오는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비용이라는 인식이 제도에 반영된 결과다.
혐오의 대가는 가해자가 치른다.
이러한 법적 대응의 배경에는 공통된 철학적 전제가 있다.
법 이전에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윤리다.
칸트의 정언명령은 타인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고 말한다.
피해자의 고통을 자신의 정치적 주장이나 이념을 드러내는 도구로 삼아
상징물에 봉지를 씌우는 행위는, 그 자체로 윤리적 파산이다.
타자의 존엄을 훼손하면서 얻는 어떤 주장도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의 얼굴’ 역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비춘다.
고통받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근원적 책무다.
그 얼굴을 가리는 행위는 단순한 물리적 훼손이 아니라,
공동체의 양심을 스스로 가리는 폭력이다.
소녀상의 얼굴을 덮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피해자뿐 아니라 현재의 윤리적 책임으로부터 도망친다.
기억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공동체 안에서 역사적 비극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일은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공윤리다.
이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요구가 아니라,
사회가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시험이다.
기억을 모욕하는 행위가 방치될 때, 그다음은 언제나 더 약한 존재를 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는 우회로에 의존하고 있다.
공원녹지법이나 경범죄 처벌 조항을 적용해 문제를 봉합하려 하지만,
이는 본질을 비켜간 미봉책에 불과하다.
역사적 상징물 훼손과 피해자 모욕이라는 핵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한,
법은 계속 뒤따라가며 변명하게 된다.
이제는 직접적인 입법이 필요하다.
역사적 상징물 훼손과 피해자 모욕을 명시적으로 단죄하는 법,
혹은 증오범죄에 대한 가중처벌을 분명히 규정한 제도가 요구된다.
이는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인간 존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동시에 교육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법적 처벌은 마지막 저지선일 뿐,
혐오가 발붙이지 못하는 공공윤리를 형성하는 일은 더 긴 호흡의 과제다.
법의 품격은 가장 아픈 곳을 어떻게 다루는지에서 드러난다.
혐오를 방치하는 법은 존재 이유를 스스로 훼손한다.
지금 우리가 메워야 할 것은 단순한 법적 공백이 아니라,
‘가장 아픈 사람을 먼저 지키겠다’는 공동체의 약속이다.
그 약속이 회복될 때, 비로소 사회에는 인향이 흐른다.
인간의 향기다.
그 향기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법이 법다워지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