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연

유일한 유년의 증인 친구

by 박온유

1986년,

전학생으로 처음 만났던 코흘리개 시절, 우리는 서로의 낯섦을 가장 먼저 알아봐 준 이웃이었다.

5학년 때 먼저 전학 온 나와, 1년 뒤 6학년 때 전학 온 소정이.

우리는 그 시골 학교에서 철저한 이방인이자, 외부인을 배척하는 나쁜 습성 속에 던져진 '왕따' 소녀들이었다.


그들이 던지는 날카로운 시선과 배제 속에서, 우리는 서로가 아니면 숨 쉴 곳조차 없던 외딴섬이었다.


전학이라는 이별로 각자의 길을 떠나 흩어졌던 시간이 무색하게, 스무 살의 길목에서 우리는 기적처럼 다시 만났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서로의 영혼이 기억하고 있던 인격적 중력이었다.

그런 나의 단 하나뿐인 유년의 조각, 소정이가 지금 가장 깊은 어둠 속에 있다. 내가 '10,300'이라는 지독한 고통의 무게에 짓눌려 있듯, 그녀 또한 자신의 생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보고 싶어서, 그저 안전한 지만이라도 알고 싶어서 수없이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건 공허한 신호음뿐이었다. 침묵은 길었고, 나의 불안은 그 침묵의 길이만큼 비대해졌다.

그러다 지난주, 간신히 닿은 짧은 목소리는 "너무 힘드니 다음에 전화할게"라는 말로 다시 끊어졌다. 그 짧은 거절조차 나에게는 그녀가 살아있다는 최소한의 신호였기에, 나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설 연휴의 이튿날인 오늘, 마침내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절벽 끝에 서 있다. 과거를 추억하며 웃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저 서로가 살아있는지 확인해야 했고, 연결된 전화기 너머로 한 시간을 내리 울기만 했다. 그 울음은 기억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힘내자. 우리 지금 바닥이니까, 이제 올라갈 길밖에 없잖아."

서로의 건강을 챙기라는 말조차 비명이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소정이는 내 어린 소녀 시절의 지옥을 함께 통과한 유일한 증인이다. 우리가 그때 그 모질었던 왕따의 시간을 버텨내며 살아남았듯이, 지금 이 잔인한 현실 앞에서도 서로를 놓지 않으려 한다.

소녀 대 소녀로 만나, 가장 아픈 밑바닥에서 다시 마주한 우리. 이제는 추억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