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광기와 파산한 민주주의
지독한 독감으로 세상과 단절된 채 앓아누워 있었다.
뒤늦게 접한 세상의 소식은 믿기 힘든 비극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그 갑작스러운 충격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설마 전쟁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비관적인 현실이 확정되어 버리자,
내 머릿속은 비관에 비관이 더해지는
더 깊은 절망의 구조로 나아갔다.
머릿속은 순식간에 불확정성의 심연으로 확장되었다.
독감으로 지친 몸이 경직되고 호흡이 가빠질 정도로 내 심장을 짓누른 것은 단순히 전쟁의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광기가 빚어낸 확정된 비극이었다.
이란 남부 미나브의 한 초등학교에서 희생된 165명의 어린 소녀들.
그 아이들의 미래와 인류의 양심은 미사일과 함께 매몰되었다.
트럼프와 네타냐후, 그들이 말하는 압도적인 위상과 정치적 생존의 대가가 고작 아이들의 피 묻은 책가방이란 사실에
깊은 환멸을 느낀다.
이 비극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선을 넘어버렸다.
지금의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를 보며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지 절감한다.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썼을 뿐, 사실상 군사정부와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도구로 쓰고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가 믿어온 가치들은 너무나 쉽게 파산해 버렸다.
정권을 바꾼다는 명분 아래 벌어지는 파괴 뒤에는 더 깊은 혼돈만이 기다리고 있다.
정작 이란을 수습할 민주적인 대안 세력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조직력과 무력을 갖춘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가 그 공백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나를 더 절망케 한다.
그들이 전면에 나선다면 이는 결국 이름만 바뀔 뿐 지금과 다르지 않은 억압의 굴레가 반복되는 것일 뿐이며,
안정화가 아닌 또 다른 증오의 연속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고 막을 수 있는 길은 차단되었다.
미국의 독주와 이기적인 권력욕 앞에 세계의 평화와 경제는 위태로운 모래성처럼 흔들리고 있다.
분명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분노를 느끼고 있겠지만 정작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 지독한 무기력함이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거대한 폭력의 수레바퀴 앞에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평범한 이들의 슬픔이
이 미친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