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죽어야...

같은 방식으로 지워지는 생명들

by 박온유

나는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든다.

최근 나는 두 개의 곡을 만들었다.

하나는 미니애폴리스에서 죽은 간호사를 기억하기 위한 곡,

He Was a Nurse (In Memory of Alex Pretti),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란의 한 지역에서 폭격으로 사라진 초등학생들을 담은 곡,

Silent Desks (The Cries of Minab)이다.


이 두 곡은 처음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였다.
하나는 미국의 거리에서, 하나는 전쟁 지역에서.

하지만 작업을 이어가면서 나는 점점 이 둘을 구분할 수 없게 됐다.

왜냐하면 둘 다 같은 방식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알렉스 프레티는 간호사였다.
그는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마지막 순간에도

타인을 돕고 있었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협’으로 판단되었고

여러 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란에서 죽은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교실에 있었고 하루를 시작하려던 중이었다.

그 어떤 군사적 판단에도 포함되지 않는 존재들이었지만

폭격은 그들을 구분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다.
미국이냐, 이란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판단의 방식이다.


누군가를 ‘위협’으로 간주하는 순간
그 사람의 삶은 더 이상 개별적인 것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그는 제거 가능한 대상으로 전환된다.

이 전환은 전쟁터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거리에서도 국경에서도 작전이라는 이름 아래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알렉스 프레티는 전쟁터에서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전쟁과 같은 방식으로 죽었다.

판단은 빠르게 이루어졌고
확인은 충분하지 않았으며
결과는 되돌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이후에 설명되었다.

이게 핵심이다.


전쟁은 총성이 아니라 구조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분류하고 제거한 뒤 그 과정을 나중에 정당화하는 방식.

이 구조 안에서는 아이도 간호사도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부수적 피해’가 되고,
간호사는 ‘작전 중 발생한 불가피한 결과’가 된다.

표현은 다르지만 기능은 같다.

개인을 지운다.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무엇을 하려던 중이었는지.
이 모든 구체성은 사후 설명 속에서 제거된다.

그리고 남는 건 하나다.


“어쩔 수 없었다”는 문장.

이 문장은 강력하다.


왜냐하면 책임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으면서도

책임을 작동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잘못은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불가피했다.

이 구조 안에서는 어떤 죽음도 전쟁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죽어도 간호사가 총에 맞아 쓰러져도
그 모든 사건은 개별적인 비극으로 분리된다.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반복된다.


나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생명이 죽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여전히 숫자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알렉스 프레티의 죽음은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단 한 명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건이 가벼운가.

아니다.


그 한 명의 죽음 안에는
그가 살렸던 사람들 앞으로 살릴 수 있었던 시간
그리고 그가 존재하던 자리 전체가 함께 무너져 있다.


이란에서 죽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숫자로 묶이지만 각각은 하나의 세계였다.

그 세계들이 한 번에 지워진다.

그래서 문제는 숫자가 아니다.


하나의 죽음이 발생했을 때 그 죽음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가.

알렉스 프레티의 죽음이 ‘작전의 일부’로 정리되는 순간,
아이들의 죽음이 ‘부수적 피해’로 분류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같은 구조 안에 들어와 있다.

그 구조는 계속해서 같은 결과를 만든다.

그래서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전쟁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이미 작동하고 있는 판단 방식의 확장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을 만들면서 그걸 지우지 않으려고 했다.

알렉스 프레티를 ‘사건’으로 남기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피해 규모’로 남기지 않으려고.


그래서 이름을 남겼다.
그래서 소리를 남겼다.

지워지지 않게 하려고.

이 글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생명이 사라져야 하는가.
이 질문은 이제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계속 죽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구조를 멈추지 않는 한 다음 이름은 언제든 다시 불릴 수 있다는 걸.



He Was a Nurse (In Memory of Alex Pretti)


Silent Desks (The Cries of Min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