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는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는다

- 죽음이라는 상태 변화(Phase Transition) 앞에서

by 박온유

자기 연민의 부재:

야생의 위엄 D.H. 로렌스는 그의 시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어떤 야생동물도 스스로를 가엽게 느끼지 않는다. 얼어 죽어 나무에서 떨어지는 작은 새조차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다."

상상해 보라. 깊은 숲 속, 늙고 병든 늑대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는 차가운 설원 위에 홀로 누워 있다. 살이 찢기는 고통과 체온이 빠져나가는 한기 속에서도, 늑대는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지 않는다. "왜 하필 나인가?"라며 신을 원망하지도, 지나간 봄날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고요하게, 자신의 육체가 흙과 바람으로 환원되는 과정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오직 인간만이 죽음을 '비극'이라 부르며 호들갑을 떤다. 사라지는 자신을 가엽게 여겨 연민의 늪에 빠진다. 왜인가? 인간은 '나'라는 자아(Ego)를 자연과 분리된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오만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고체로 남고 싶다는 그 욕망이, 자연스러운 마침표를 비극적인 파국으로 왜곡한다.




시야의 한계:

비트겐슈타인의 침묵, 이 지점에서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늑대의 침묵에 강력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한다. 그는 <논리철학논고>에서 단언했다. "죽음은 삶의 사건이 아니다.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다."

우리의 눈은 세상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정작 '눈 그 자체'는 볼 수 없다. 눈이 보지 못하는 지점은 시야의 끝, 즉 '경계'다. 삶과 죽음의 관계도 이와 같다. 죽음은 내 삶 안에서 벌어지는 어떤 슬픈 사건(Event)이 아니라, 나의 세계가 닫히는 명백한 '한계(Limit)'일뿐이다.


그러므로 비트겐슈타인은 말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우리가 죽음을 두고 "슬프다, 허무하다, 억울하다"라고 떠드는 것은, 경험할 수 없는 시야의 바깥을 억지로 언어로 규정하려는 시도다. 늑대가 침묵하는 이유는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섭리는 인간의 얄팍한 언어로 오염시킬 수 없는 성역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침묵은 무지가 아니라, 그 거대한 질서 앞에서의 가장 높은 예우다.




소멸이 아닌 도약:

상태 변화(Phase Transition), 그렇다면 그 고요한 침묵의 너머, 언어가 닿지 못하는 그곳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는 그것을 물리학적 개념을 빌려 '상태 변화(Phase Transition)'라고 정의한다.

열역학 제1법칙에 따르면, 우주의 에너지는 결코 생성되거나 소멸하지 않고 오직 형태만 바꿀 뿐이다.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물이 끓어 수증기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질 때, 우리는 물 분자가 죽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에너지를 받아 더 자유로운 차원으로 이동하는 '상태의 도약'이다.


나에게 죽음 또한 다르지 않다. 심장이 멈추고 뇌파가 정지하는 것은 '존재의 삭제'가 아니다. 그것은 영혼이라는 고유한 정보(Information)가 육체라는 3차원의 좁은 옷을 벗고, 본향(本鄕)이라는 더 고차원의 세계로 진입하는 물리적 현상이다.

나에게는 돌아갈 곳이 명확히 존재한다. 죽음은 그곳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는 찰나의 과정일 뿐이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덜컹거림을 추락이라 부르지 않듯, 나는 육체의 정지를 소멸이라 부르지 않는다.

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온전하고 자유로운 상태로 이동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결론:

그러니 우리는 늑대처럼,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처럼 살아야 한다. 삶의 한복판에서는 누구보다 뜨겁게 사유하고 사랑하되, 죽음이라는 명백한 한계가 다가올 때는 구차한 자기 연민으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내가 사라지다니 불쌍해"라는 나약한 감상 대신, "이제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되었구나"라는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 그 침묵은 공포가 아니다. 나의 존재가 다음 단계로 변화할 준비를 마쳤다는 가장 고요하고 위엄 있는 신호다.


기억하라. 어떤 야생동물도 스스로를 가엽게 느끼지 않는다. 살아간다는 것이 곳 죽어가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어떤 인간도 스스로를 동정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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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곡은 저의 오리지널 자작곡입니다. 저의 유튜브 공식아티스트채널(OAC)에서 저의 다양한 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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