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오신 날"

왜곡된 성탄 너머 대속의 본질을 묻다

by 박온유


날짜의 불확실성 속에 감춰진 확실한 사건


우리는 매년 12월 25일을 성탄절로 기념하지만, 사실 이 날이 예수의 실제 탄생일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부활하신 날이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 역시 인간의 역사는 정확한 숫자로 기록해두지 못했다. 그러나 날짜의 불확실성이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는 없다.


성경이 증언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언제' 오셨느냐가 아니라, 그분이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그 자체이다.


성탄은 단순히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거대한 사역을 완수하기 위한 필연적인 시작이다.




죽을 수 있는 몸을 입으신 신의 선택


신학적으로 성탄은 '성육신(Incarnation)'이자 '비움(Kenosis)'의 사건이다.


절대적인 존재가 스스로 한계를 가진 인간의 몸 안에 갇히기로 작정한 것이다.

신은 죽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죄인을 대신해 죽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육체가 필요했다. 즉, 예수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온 유일한 목적은 대속의 제물이 되어 죽는 것이다.


성탄은 십자가라는 처절한 제단에 오르기 위해 스스로 낮아진 신의 지독한 연대이며, 인간과 동일해지려는 가장 낮은 방식의 잠입이다.




성탄의 진정한 목적지


성탄이 사역의 '입구'라면, 십자가는 그 사역의 '목표'이자 '정점'이다.


십자가가 없었다면 기독교는 그저 좋은 도덕적 가르침을 주는 종교에 불과했을 것이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는 엄중한 법 아래에서, 그분은 스스로 어린양이 되어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다.


결국 십자가 대속이야말로 성탄이라는 수단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최종적인 목적지이다.

이 대속의 죽음이 있었기에 비로소 구원의 길이 열렸으며, 부활은 그 대속의 사역이 완벽한 승리였음을 증명하는 확증의 도장이 되었다.





왜곡된 성탄과 상업주의의 그늘


오늘날의 성탄절은 본래의 목적을 잃고 인간이 즐기기 위한 화려한 축제로 변질된 면이 크다.


'아기 예수'라는 따뜻한 이미지와 '선물'이라는 요소는 상업적으로 포장하기에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는 무겁고 처절하며 자신의 죄를 직시하게 만들기에, 세상은 성탄의 화려함으로 십자가의 그림자를 덮어버리려 한다.


부활절보다 성탄절을 더 떠들썩하게 지키는 현상은, 어쩌면 우리가 대속이라는 무거운 진실보다는 탄생의 가벼운 축복만을 누리고 싶어 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차분한 감사로 맞이하는 대속의 성탄


성탄절을 바르게 해석한다는 것은 탄생의 기쁨 너머에 있는 십자가의 붉은 의미를 읽어내는 일이다.


십자가 대속이라는 방점에 마음을 둘 때, 우리는 비로소 성탄절을 인간의 유희가 아닌 신의 지극한 희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화려한 장식과 들뜬 분위기에 취하기보다, 나를 대신해 죽으러 오신 그분의 무거운 발걸음을 조용히 묵상해야 한다.


그분이 오신 진짜 목적을 명확히 알 때, 우리의 성탄은 비로소 바른 의미를 되찾고 깊은 평안과 진정한 감사에 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