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연결 시대에서 개인이 스스로의 소모를 줄이고 채우 기 위한 방법
나는 소통과 타인의 생각을 통해 함께 성장하고 싶어서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다른 삶의 리듬을 접하고, 서로의 생각이 조금씩 변해 가는 과정을 보고 싶었다.
그곳은 한때 그런 공간이었다.
사람의 말이 먼저 보였고, 관계의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피드를 열면 친구의 글보다 광고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친구의 생각은 광고 사이에 끼어 짧게 잘려 있었다.
나는 소식을 보러 왔는데, 계속해서 무언가를 팔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화의 흐름은 자주 끊겼고, 감정은 이어지지 않았다.
가장 피로했던 것은 광고의 양이 아니라 위치였다.
광고는 친구의 글과 글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대화에 끼어드는 것처럼, 관계의 틈을 파고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친구의 소식을 보기 위해 광고를 넘기는 구조가 되었다.
나는 어느새 참여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되어 있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질문은 단순한 짜증이 아니었다.
이 공간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흐려지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떠나기도 쉽지 않았다.
이곳에는 이미 너무 많은 나의 글과 사진, 시간과 감정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축적된 나의 자료였다.
이 경험은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조직은 사람의 개성을 바꾸고, 개인은 조직 속에서 소모되는 사회에서
왜 개인의 사적인 공간이라 믿었던 SNS까지
개인의 소모를 유도하는 구조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이다.
조직은 사람을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말투는 정제되고, 판단은 단순화되며, 욕망은 조율된다.
이 변화는 폭력이 아니라 적응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 바뀌고 있다고 느끼지 못한 채, 점점 다른 사람이 된다.
문제는 이 논리가 퇴근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SNS는 사적인 공간처럼 보이지만, 이미 조직의 논리와 자본의 논리가 깊이 스며든 장소다.
광고는 제품을 홍보하는 수준을 넘어, 개인의 감정과 취향, 관계의 방식까지 제안한다.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 어떤 삶이 바람직한지, 어떤 모습이 더 나은 선택인지 끊임없이 말한다.
이 구조에서 개인의 소모는 눈에 띄지 않는다.
강요가 아니라 유도이기 때문이다.
참여하라고 말하고, 표현하라고 말하고, 공유하라고 말한다.
개인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노출하고, 자발적으로 반응하며, 자발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제공한다.
그래서 소모는 더 깊고, 더 오래 지속된다.
이 초연결 시대에서 개인이 완전히 소모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탈출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탈출은 불가능하다.
필요한 것은 거리다.
모든 연결에 즉각 반응하지 않을 거리,
모든 요구에 자신을 맞추지 않을 거리다.
소모를 줄이는 것은 더 강해지는 일이 아니다.
더 많이 견디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덜 반응하는 일이다.
모든 알림에 응답하지 않고, 모든 흐름에 참여하지 않으며,
모든 감정에 이름 붙이지 않는 선택이다.
반응을 늦추는 순간, 개인은 시스템의 속도에서 한 발 물러난다.
그렇다면 채워짐은 어디에 있는가.
채워짐은 더 많은 정보나 자극에 있지 않다.
대부분의 자극은 소모를 가속할 뿐이다.
채워짐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시간에서 시작된다.
기록되지 않아도 되는 생각,
공유되지 않아도 되는 감정,
평가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개인을 회복시킨다.
이 지점에서 예술은 다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술은 효율을 요구하지 않고, 성과를 요구하지 않으며, 즉각적인 반응을 강요하지 않는다.
예술은 개인에게 말한다.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고, 이해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순간, 개인은 더 이상 완전히 소모되지 않는다.
조직과 플랫폼, 광고는 계속해서 개인을 사용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이 질문을 놓지 않는 한, 자신을 전부 내주지는 않는다.
이 질문은 해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멈추게 만든다.
그리고 그 멈춤 속에서, 개인은 다시 자신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