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책임지는 삶

관측으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하여

by 박온유



나는 오래전부터 철학을 살고 있었다.
철학자의 이름을 외우거나, 개념을 정확히 구분해서가 아니라
삶이 언제나 나의 선택으로만 진행된다는 사실을 끝내 회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학을 산다는 것은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의 주체가 나임을 자각한 채 선택의 결과를 운명이나 타인, 시대에 전가하지 않는 태도다.
나는 늘 그 방식으로 살아왔고, 다만 그 삶이 언어로 정리되지 않았을 뿐이다.


삶은 하나의 고정된 서사가 아니다.
그보다는 중첩된 가능성들의 상태에 가깝다.
매 순간 나는 선택을 통해 수많은 시간선 중 하나를 관측하고 확정한다.
그리고 확정되지 않은 나머지 가능성들은 뒤늦게 ‘후회’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그래서 후회는 실패의 증거가 아니다.


후회는 관측이 이루어졌다는 흔적이다.
선택이 있었고, 그 선택이 되돌릴 수 없음을 인식했을 때
비로소 생겨나는 감정이다.

이 구조에서 삶은 점점 하나의 궤적으로 좁혀지지만, 그 궤도의 총합적 의미는
끝내 주체에게 도달하지 못한다.


나는 나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 삶의 결론을 경험할 수는 없다.

죽음은 나에게 사건이 아니라 경계다.


나는 나의 죽음을 관측할 수 없고, 오직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완결된 삶’으로 확정된다.
그래서 나의 철학은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닫힌다.

이것은 허무가 아니라 윤리다.
삶이 완성될 수 없기에 나는 무책임해질 수 없고,
결론을 소유할 수 없기에 과정은 언제나 진지할 수밖에 없다.


나는 새로운 사상을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의 사상을 그대로 반복한 것도 아니다.
이미 존재했던 사유들을 한 사람의 삶으로 통과했을 뿐이다.
그래서 새롭지 않지만, 결코 동일하지도 않다.


돌아보면 오래전에 쓴 글들 속에도 이미 이 구조는 있었다.
그때의 나는 철학자들의 언어로 말했고, 지금의 나는 내 삶의 언어로 말할 뿐이다.
질문은 같았고, 체온만 달라졌다.

나는 철학자도 아니고, 몽상가도 아니다.
다만 내 삶을 끝내 가볍게 닫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완성을 포기한 채 책임을 선택해 온 사람이다.

아마 이것이 내가 살아온 방식이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오늘에서야 하나의 장면으로 본다.
새롭게 깨달아서가 아니라
이미 살아온 구조를 이제야 정확히 인식했기 때문에.


오늘은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이 글은 결론이 아니라 하루를 정리한 관측 기록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