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야 할 매일
지난 25년 11월부터 나는 최저임금으로 산다.
이 문장은 선언도 아니고, 각오도 아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
임금이 절반으로 삭감되면서 현실이 되었을 뿐이다.
세상이 이렇게 흘러간다는 것도, 물가는 오르고 임금은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도,
금융의 리스크가 개인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일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그 모든 조건이내 삶의 전제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 벌리기 위해 살지 않기로 한다.
리스크를 키워 한 번의 판단으로 삶의 균형을 뒤집는 방식은
지금의 나를 살게 하지 못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잃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크게 얻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실패로 일상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잃더라도 최소한으로 잃는 구조 안에 머무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금융은 희망을 증폭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완충재로 둔다.
선택을 조금 늦출 수 있는 시간, 불안을 즉각 행동으로 바꾸지 않아도 되는 여유,
그 정도만 지켜주면 된다.
소비도 마찬가지다.
버티기 위해 쓰는 돈은 줄이고, 내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소비,
내 시간을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만드는 소비에 우선순위를 둔다.
이건 사치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판단이다.
나는 이 삶을 극복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 조건 안에서 나를 지우지 않고 계속 살아갈 방법을 선택한다.
글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쓰지 않는다.
지금의 세계를 지금의 언어로 이해하려는 기록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읽히면 좋겠지만, 읽히지 않아도 이 기록은 남긴다.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을 뿐.
그래서 나는 이 조건 안에서 부서지지 않는 쪽을 선택하며
2026년을 살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