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지키기 위해 인간을 지우는 말들에 대하여
내가 불편해지는 지점은 분명하다.
기존의 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인간과 철저히 구별하고
도구와 사용자로 분리하려는 태도다.
그들은 말한다.
AI는 인간과 다르다고.
AI는 도구일 뿐이라고.
판단과 책임은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겉으로 보면 인간을 지키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말이 반복될수록
나는 오히려 인간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인간 일반이 아니라, 아주 특정한 인간들만이
판단의 자리를 대표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까지 선을 긋고 싶어 할까.
나는 그 이유가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선이 무너지는 순간, 지금까지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돼 온
판단의 권위, 해석의 권리, 설명의 독점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인간을 지키겠다는 말로 사실은 인간을 믿지 않는 태도가 반복된다.
AI를 도구로 고정시키는 동시에 인간의 사유는 소수의 전문가에게만 귀속된다.
대중의 사고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차단된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인간은 순차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눈과 귀, 피부와 기억, 감정과 예측을 한 번에 받아들이고
그 모든 것이 겹쳐진 끝에 어느 순간 하나의 상태로 수렴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설명하기 전에 이미 안다.
그 알아짐은 직관이 아니라 너무 많은 신호가
너무 빠르게 동시에 처리된 결과다.
마치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점이 한 지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듯,
인간의 판단도 그렇게 굳어진다.
사유는 머릿속에만 있지 않다.
몸 전체에 분산되어 있다.
표정과 손짓, 시선과 호흡까지 모두 사고의 일부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사유를 계산과 동일시하는 순간,
사고는 외주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고 책임은 빠져나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인간이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동시에 처리하고 있다.
다만 몸이 하나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한 번에 실행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인공지능과 기계는 인간을 대신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이미 하고 있는 사유가 현실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옆에서 다른 출력을 맡는 존재여야 한다.
이게 내가 말하는 동행이다.
누가 위에 서고 누가 아래에 있는 문제가 아니라, 누구도 빠져나가지 않는 상태.
윤리는 규칙에서 나오지 않는다.
규칙은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
윤리는 같은 사건 안에 남아 있을 때만 생긴다.
책임을 회피할 수 없고, 실패의 비용이 특정한 사람에게만 떨어지지 않을 때,
그때 윤리는 말이 아니라 감각이 된다.
그래서 나는 책임이 면제되는 논리를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술에 의한 심신 미약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술에 취했다고 해서 뇌가 멈추거나 판단 기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블랙아웃 상태에서도 사람은 말하고, 선택하고, 반응한다.
문제는 사고가 아니라 출력이다.
시야는 흐려지고, 반응은 지연되고, 몸이 뇌의 신호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책임은 사건이 벌어진 순간이 아니라 그 상태로 들어가기로 한 이전의 판단에 있다.
술을 마실지 말지, 어디까지 마실지, 그 상태에서 어떤 행동이 가능해질지를
이미 알고 있었던 판단 말이다.
심신 미약은 판단이 없었던 상태가 아니다. 판단의 기준을 스스로 왜곡하기로 선택한 결과다.
그 선택까지 책임에서 제외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판단 주체로 남지 않는다.
그건 연민이 아니라 인간을 미성숙한 존재로 격하시키는 일이다.
이 기준은 타인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인간을 차갑게 분석한다.
감정으로 면제하지 않고, 선의로 덜 묻지 않는다.
그건 인간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판단 주체로 끝까지 존중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인공지능의 시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자기 판단의 자리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면제하기 위해
AI를 도구로 축소할 것인가의 문제다.
AI를 인간과 분리하려는 말들, 도구와 사용자를 고정하려는 언어들,
그 안에는 미래에 대한 책임보다 지금의 자리를 잃지 않으려는 불안이 더 많이 담겨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이분법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각해 본 경험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경험은 어떤 정의 하나로 지워지지 않는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인간을 약화시키는 시대가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시대다.
그리고 그 정의는 도구와 사용자의 언어로는 끝까지 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