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안개속에는 안개가 없다.

by 박온유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본 사람은 안다.

안개 속에는 안개가 없다.

내가 안개다.


어제 오후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이 시작됐다.

갑작스럽다기보다는

천천히, 분명하게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제와 오늘은 분명히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밤이 되면 조금 나아질 거라 생각했고

아침이 오면 괜찮아질 거라고

습관처럼 기대했지만

우울감은 시간을 건너뛰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또 약을 먹었다.


솔직히 말하면

약을 먹었다는 사실이

패배처럼 느껴진다.

또 이 방법밖에 없나 싶고,

여기까지 버텼는데 결국 약인가 하는

자괴감이 따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의지로 넘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패배처럼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는 선택.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쪽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은 결정이었다.


오늘 예배에 가려고 했지만

잠깐 눈을 붙인 사이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참석하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가려고 했던 마음이

어제부터 이어진 우울감 속에서

같이 가라앉아 버린 것 같아

조금 더 아팠다.


나는 우울이

내 하루를 망치게 두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우울은

하루 단위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제에서 오늘로,

아무 설명도 없이 이어진다.


예배를 놓쳤다고 해서

내 믿음이 사라진 건 아니고,

약을 먹었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패배한 것도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오늘을 더 잃어버릴 것 같아서

이렇게 적어 둔다.


어제 오후부터 시작된 이 우울감이

오늘을 전부 삼키지 못하도록

나는 글로

나 자신을 붙들어 둔다.


오늘은

괜찮은 날도, 좋은 날도 아니다.

하지만 패배처럼 느껴지는 선택을 하면서도

나는 아직

남은 하루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안개.- 정훈희 & 송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