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반짝임 이후의 공백에 대하여

by 박온유


아이돌은 꿈의 직업처럼 말해진다.
노래하고, 춤추고, 사랑받고, 성공하는 서사.
하지만 그 서사는 언제나 활동기까지만 유효하다.


아이돌은 기획사의 관점에서 사람이 아니라 투자 프로젝트다.
연습생 시절의 시간과 몸은 선투자이고,
데뷔 이후의 활동은 회수 구간이다.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계획된 수익이 발생하면
프로젝트는 종료된다.

그 이후는
“개인의 선택”
“각자의 인생”
“알아서 살아야 할 몫”으로 처리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아이돌의 활동기는 사회가 요구하는 경력으로 번역되지 않는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규율을 따랐고, 감정을 관리했고,

신체를 혹사했고 , 대중 앞에서 노동했다.

그러나 그 노동은 활동이 끝나는 순간 아무 경력도 남기지 못한 시간이 된다.


어릴 때부터 그 일 하나에만 몰입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에서
다른 선택지를 배울 기회는 거의 없다.
학력은 끊기고, 직무 전환에 필요한 기술은 쌓이지 않는다.

그래서 활동이 끝나면 그들은 갑자기 무능해진 사람처럼 취급된다.

이건 실패가 아니다.
소모다.


아이돌 산업은 젊음과 가능성을 빠르게 태우는 구조 위에 서 있다.
소수의 성공 사례가 다수의 소진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그 소진의 이후는 개인의 책임으로 밀어낸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한때는 좋았잖아.”
“선택한 길이잖아.”

하지만 그 말은 구조가 만든 공백을 개인의 감내로 덮는 말이다.

반짝임이 사라진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 삶을 준비하지 않는 산업은 꿈을 판 것이 아니라
사람을 써버린 것에 가깝다.


이 문제를 드러낸다는 건 누군가를 불쌍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성공담을 부정하기 위함도 아니다.

다만 반짝임 뒤에 남겨진 시간을 삶으로 인정하자는 요구다.


나에겐 한때 잘 나가던 아이돌 동생이 있다.

우연히 함께 촬영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여리고 순수하고 풋사과 같은 초록빛이었다.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그녀는 바빴고

우리의 연락은 늘 공백이 있었다.

그 공백은 게으름도, 무심함도 아니었다.

그녀가 속한 산업이 숨 돌릴 틈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이돌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이두나〉

문제가 생겨 활동을 중단한 아이돌,
칩거에 가까운 생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공백.

드라마는 이 시간을 회복의 서사처럼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공백은 회복이 아니라 방치에 가깝다.

아이돌은 멈출 수는 있지만 머물 수는 없다.
쉬는 시간은 허락되지만 그 이후의 삶은 준비되지 않는다.


문제가 잦아들자 주인공은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회복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자꾸 내가 알고 있던 그 아이돌 동생이 떠올랐다.

우연히 다시 연락이 닿았을 때 그녀는 카페알바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며 종종 울었다.

이야기가 슬퍼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현실이
너무 정확하게 겹쳐졌기 때문이다.


이 글은 드라마에 대한 감상이 아니다.
개인의 안타까움을 털어놓는 글도 아니다.

아이돌 산업이 어떻게 사람을 사용하고, 어디까지 책임지지 않는지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한 기록이다.


아이돌이 실패해서 사라진 게 아니라, 산업이 그 이후를
의도적으로 비워두었다는 사실을.

그 공백을

더 이상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두지 않기 위해
나는 이 글을 쓴다.




2023-10-29 / 페이스북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꾸 보이니...

ㅠㅠ

"너의 췌장이 먹고 싶어"

난 사랑하는 사람을 먹는다.

그는 내 속에 영원히 남고

나는 그래서 종종 아프다.

보고 싶다. 지금.

어디서든 부디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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