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의 부활

국제질서는 어디로 갈 것인가?

by 박온유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그린란드 확보를 위해 5만 7천여 그린란드 주민에게
1인당 1만 달러에서 10만 달러 사이의 금전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그린란드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뿐만 아니라 세계의 미사일 방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분노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침묵이었다.
충격적이어서가 아니라,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어디까지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지 순간 판단이 멈췄기 때문이다.


돈으로 여론을 설득하고, 군사적 필요를 이유로 영토를 설명하며,
동맹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라”라고 경고한다.

이것은 외교적 수사가 아니다.
제국의 언어다.


그린란드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이 사안의 본질은 “영토는 이제 거래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세계 최강국이 공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 3일 베네수엘라에서는 미국은 군사적 행동으로 발을 떼었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체포되었고, 국제사회는 우려의 성명을 냈지만
미국은 행동을 멈추지도 변경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린란드 앞에서 미국은 군대를 멈추고 계산기를 꺼냈다.
이유는 명확하다.
그린란드는 나토의 내부에 있고, 덴마크는 넘을 수 없는 선이기 때문이다.




제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상대에 따라 무기와 언어를 달리 쓸 뿐이다.

과거의 제국주의는 총과 군함, 점령과 식민지라는 명확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이 보여주는 제국주의는 다르다.

점령이 아니라 협상의 언어를 쓰고

강탈이 아니라 지원의 형식을 취하며

폭력이 아니라 선택을 강조한다.

힘 대 힘이 아닌 지역에는 직접 군사력을 투사한다.

언어는 외교적으로 포장되었지만 전체 구조는 오히려 더 노골적이다.


더 불편한 지점은 따로 있다.
이 발상이 권위주의 국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민주 진영의 중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국제질서를 설계해 왔고, 규칙 기반 질서를 주도해 왔으며,
동맹과 가치의 언어를 사용해 왔던 나라가 이제는 규칙을 ‘해석’하는 주체가 아니라
규칙을 ‘거래’하는 주체로 이동하고 있다.

이것은 국제질서의 붕괴는 아닐지라도 명백한 국제질서의 성격 변화를 보여준다.

규칙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강대국이 원할 때만 작동하는 규칙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예외가 아니다.
앞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더 크다.

기후 위기, 자원 고갈, 식량과 수자원 문제, 북극과 해양, 우주와 사이버 공간.

이 모든 영역은 이미 “국가의 경계”가 아니라
전략적 공간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을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먼저 정당화하느냐의 싸움이 시작됐다.

그린란드는 그 첫 장면일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변화 속에서 어디에 서야 하는가.

과거처럼 한쪽 진영에 완전히 기대는 선택은 이제 더 위험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호한 중립이나 도덕적 선언으로
이 흐름을 피해 갈 수도 없다.


한국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위치는 명확하다.

안보는 동맹을 통해 확보하되

경제와 자원, 기술은 다중 축으로 분산하고

진영이 아니라 기능과 역할 중심으로 외교와 산업을 재설계해야 한다.

이것은 기회주의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이제 당면한 문제는 미국이 제국주의적 선택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강대국은 언제나 그럴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아직도 그 선택을 “질서를 지키기 위한 예외”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자신을 제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대신 안보, 안정, 책임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편을 드는 용기가 아니라 정확히 보는 용기다.


국제질서는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다른 모습으로 위협적일 만큼 빠르게 재조립되고 있다.

그리고 그 재조립의 언어가 더 이상 원칙이 아니라 거래라면,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세계는

누구의 규칙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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