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를 묻다.

해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by 박온유


국군방첩사령부가 해체된다.
1977년 국군보안사령부로 출발해 이름을 바꾸며 존속해 온 조직이
49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표면적으로는 조직 개편이다.
하지만 이 결정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이건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의 형태에 대한 질문이다.


방첩사는 태생부터 권한 집중형 조직이었다.
안보 수사, 방첩 정보, 보안 감사, 그리고 인사 관련 첩보까지.
이 모든 기능이 하나의 조직 안에 묶여 있었다.

이런 구조에서 중요한 건 “일탈이 있었는가”가 아니다.
일탈이 가능한 구조였는가 다.


12·3 비상계엄 당시 정치인 체포에 방첩사가 동원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개인의 판단 때문이 아니었다.
구조가 이미 그 가능성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결정이 ‘개선’이 아니라 ‘해체’로 간 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권한이 잘못 사용됐을 때 조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권한의 배치를 아예 다시 짜야한다는 결론이다.

자문위원회의 권고안은 큰 방향에서 옳다.


방첩 정보 기능은 국방안보정보원으로 이관하고,
보안 감사 기능은 중앙보안감사단으로 분리한다.

특히 인사 첩보와 세평 수집처럼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돼 온 기능을
전면 폐지하겠다는 선언은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군은 정보를 가질 수는 있지만, 사람을 쥐고 흔들 권리는 없다.

기관장을 군인이 아닌 민간 인력으로 임명하겠다는 결정도

중요하다.


문민 통제라는 원칙을 제도 안에 분명히 새기겠다는 시도다.

여기까지는 분명 진전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한국 사회는 이미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봐왔다.
조직을 쪼개고, 이름을 바꾸고, 간판을 교체했지만
실질은 거의 변하지 않았던 경험들이다.


인력은 그대로 이동했고, 관행은 유지됐으며,
권한은 다른 이름으로 다시 집중됐다.

만약 이번 개편이 그 전철을 밟는다면, 방첩사는 사라지는 게 아니다.
분산된 형태로 재현될 뿐이다.


이번 개편이 역사적 전환이 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법률로 권한의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절대 해서는 안 되는지를
분명히 규정해야 한다.


-둘째, 외부 통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국회나 감사 기구,
민간 자문 구조가
형식이 아니라
실제 자료 접근권을 가져야 한다.


-셋째, 인사의 흐름을 차단해야 한다.
과거 방첩 라인의 핵심 인력이
새 조직의 중심을 다시 차지한다면
개편은 실패다.


1977년 이후 한국 군 조직의 그림자는 늘 정보 권력의 자율화와 함께했다.
이번 해체는 그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안보와 통제는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다.
함께 작동할 때만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태도는 환호도 아니고, 냉소도 아니다.
박수를 치기엔 이르고, 비관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건 결단의 순간이 아니다.
관리의 시작이다.


잘 관리되면 군은 더 신뢰받는 조직이 될 수 있다.
관리되지 않으면 몇 년 뒤 우리는 또 다른 이름의 방첩사를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해체는 끝이 아니다.
질문이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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