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9 09:23 MBC뉴스
먼저, 저는 소개에도 있지만 사회, 경제, 과학 분야에 대해 화학자, 가수, 미술가, 데이터분석가로서
정치적인 글은 최대한 쓰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 무게가
너무도 과중한 것이기에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주장이니 그러려니 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이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의 핵심은 형벌의 수위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를 가르는 진짜 쟁점은 단 하나다.
이 사태를 내란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아니면 정치적 충돌로 축소할 것인가.
한쪽에서는 이번 사태가
헌법기관을 대상으로 군 병력이 동원된 중대한 헌정 위협이라고 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과잉 해석이거나 정치적 공세로 규정하며
내란이라는 법적 평가 자체를 부정한다.
즉, 지금의 충돌은
‘사형이 과한가’라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내란죄의 구성요건이 성립하는가라는 법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사형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이것은 분노의 언어가 아니라 대한민국 형법이 이미 명시해 둔 법정형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오래전에 결정해 두었다.
헌정 질서를 무력으로 파괴하거나 그 실행에 착수한 행위에 대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라는 최고 형벌을 예정한다고.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이 형벌이 과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왜 이 법 조항이 다시 현실의 언어로 소환되어야 하는 가다.
“문짝을 부수고 끄집어내라.”
“야 가자!”
군 조직에서 이 언어는 비유도, 수사도 아니다.
행동을 전제로 한 실행 명령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명령이 전달되었고, 그 결과 병력이 실제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명령의 성립 요건은 단순하다.
의도, 전달, 실행.
이 셋이 충족되면 명령은 명령이다.
여기에는 해석의 여지가 없다.
논쟁은 끝났고, 남은 것은 책임이다.
국회는 건물이 아니다.
헌법이 물리적 형태를 취한 공간이다.
군 병력이 국회 본관을 돌파 대상, 제압 대상, 실행 대상으로 인식한 순간,
그 행위는 이미 정치의 영역을 벗어난다.
이는 정권 비판도, 정책 실패도 아니다.
헌정 질서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다.
이 지점에서 “계엄이었는가”라는 질문은 오히려 문제를 축소한다.
계엄이라는 법적 외피 없이도 군이 정치 공간에 진입하려 했다면,
통제 장치는 이미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실관계의 부인은 단순한 기억 착오가 아니다.
특히 군 통수권자의 입에서 나온 부인은 조직 전체를 방패로 삼는 행위가 된다.
이 순간 책임은 흐려지고, 명령은 고립되며,
군은 다시 정치의 언어를 학습하게 된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단 하나다.
관용이 반복될수록, 다음 권력은 더 멀리 간다.
과거의 쿠데타에는 탱크가 있었다.
포고문이 있었고, 군화 소리가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명령한 줄, 통신 몇 초,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뿐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국민의 적극적이고 빠른 행동으로 과거와 같은 장면은 없었지만, 선은 넘어갔다.
그럼에도 이것은 명확하게 저강도의 헌정 파괴에 해당한다.
시끄럽지 않게 기준을 바꾸고, 조용히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던 수괴의 수법이었다.
사형은 요구가 아니다.
사형은 위협도 아니다.
사형은 이미 법에 존재하는 명사다.
국가는 헌정 질서를 무력으로 전복하려는 행위에 대해 최고 형벌을 예정해 두었다.
지금 우리가 묻는 것은 이 형벌이 과한가 가 아니라,
왜 이 범죄의 구성요건이 현실에서 충족되었는가 다.
이 사건을 개인의 일탈로 끝내는 순간, 국가는 다시 한번
권력자의 탐욕을 학습시키는 교사가 된다.
이 사건은 분노로 재단할 일이 아니다.
정치적 유불리로 계산할 문제도 아니다.
군이 헌법기관을 실행 대상으로 인식했고, 최고 권력자가 그 사실을 부인했다면,
그 자체로 공화국은 경고를 받은 것이다.
사형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형이 예정된 범죄를 정치적 논란으로 낮추는 태도다.
지금 일벌백계하지 않으면,
다음에는 문이 아니라 제도가 부서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