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광기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 뉴스를 봤다.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도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사건 이 벌어졌다.
오늘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것은 외교 정책이 아니다.
정책이라는 외피를 썼을 뿐, 그 본질은 거래 중단이며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다.
유엔 산하 다수 기구에서의 탈퇴와 협약 이탈은 한 국가의 무책임한 철수 선언이 아니라
세계 질서 자체를 계약적 거래 대상으로 판단하는 사고의 연속이다.
트럼프의 언어에는 일관된 문법이 있다.
그는 동맹을 신뢰로 보지 않고 비용으로 본다.
규범을 책임으로 보지 않고 손익으로 계산한다.
이 방식은 대통령의 사고라기보다 사업가의 계산법에 가깝다.
손해라고 판단되면 철수하고, 불리하면 계약을 파기한다.
국제질서가 기업 간 계약처럼 취급되는 순간,
국가는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라 거래 상대가 된다.
이번 발표는 추상적 선언이 아니다.
미국은 실질적으로 다음과 같은 국제기구와 협약에서 참여 또는 재정 지원을 중단하거나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이 발을 뺀 유엔 및 국제기구는 다음과 같다.
유엔기후변화협약 — 파리기후협약의 제도적 기초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 — 과학적 기준 제시 기구
유엔 인구기금 — 보건·난민·출산 관련 국제기구
유엔 여성기구 — 성평등·여성 인권 핵심 기관
세계보건기구 — 글로벌 보건 대응 핵심 기구
뿐만 아니라 유엔 산하 및 관련 협의체 약 30여 곳, 유엔 밖 국제기구까지 합하면 60여 개 기관에 달한다.
이 모든 곳은 개별 기구의 성격과 목적이 다르지만 공통된 조건이 있다.
국제공동체의 책임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미국은 유엔 본체에서 탈퇴하지 않았다.
유엔 회원국으로서 남아 있으며,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도 그대로 유지한다.
권한은 유지하고, 책임만 철수한다.
이것은 고립주의가 아니다.
무임승차형 패권이다.
이 선택이 위험한 이유는 단순한 이기주의가 아니다.
미국은 여전히 초강대국이며, 핵보유국이며, 국제금융과 안보 질서의 핵심 축이다.
그런 국가가 “불리하면 빠져나간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발신하면 세상은 곧 학습한다.
규칙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힘이 있으면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은 통치가 아니라 선택적 체제 운영이고, 규칙은 기준이 아니라 옵션이 된다.
법은 권력자의 선택 사항으로 전락하고, 의무는 약한 국가에게만 남는다.
그래서 세계는 불안해한다.
미국이 극우화되고 있어서가 아니다.
미국이 질서를 유지하는 국가에서 질서를 흥정하는 국가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환경과 인권이고,
오늘은 보건이며,
내일은 안보이고,
모레는 금융이다.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한 문장만 있으면
충분히 참여를 철회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리고 이 흐름은 국제질서 밖의 일만이 아니다.
그 내부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현실화되고 있다.
2026년 1월 7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연방 이민단속국(ICE) 요원이 미국 시민권자를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37세의 미국 시민, 러네이 니콜 굿(Renée Nicole Good)은
비무장 상태였음에도 최소 3발의 총격을 받았고,
공개 영상과 목격자 진술은 사건의 정당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지역 시장과 주지사는 연방 기관의 철수와 책임 규명을 요구하며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이 사태는 단순한 과잉 대응이 아니다.
국가 권력이 자국민에게 치명적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현실은
보통의 법 집행 범주를 벗어난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공식 설명은 “정당방위”였지만, 현장 영상과 목격자 증언은
공식 설명과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이 사건은 파급력이 크다.
연방 정부의 개입이 지방 정부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미국 내부에서 권력의 정당성과 신뢰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특정 사건이 아니라
현재 미국 사회가 직면한 근본적인 균열의 징후다.
오호라, 통제로다.
통치는 계산으로 대체되었고,
책임은 손익표 아래로 밀려났다.
대통령은 세계를 이끄는 자가 아니라
불리한 계약을 파기할 권리를 가진 최대 주주처럼 행동한다.
이것은 예외가 아니다.
이것은 일탈도 아니다.
이미 시작되었고, 심화되고 있는 흐름이다.
그리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