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이 남긴 흉터
"춘천지법 형사 2부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과 특수협박 혐의로 기소된 56세 남성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그리고 40시간의 스토킹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2026 - 01 -10
이 문장은 깔끔하다.
법은 이렇게 문장으로 사건을 정리한다.
하지만 스토킹은 문장이 아니라 시간으로 남는다.
나는 오래전에 스토킹을 당했다.
새벽마다 전화가 왔다.
받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숨소리만 들리고, 그러다 끊긴다.
처음엔 무시했다.
이상한 전화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 네 시에 또 전화가 왔다.
그날은 참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세요. 어디세요.”
그랬더니 전화기 너머에서 웃듯이 말했다.
“니 남자.”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제가 어디 사는지는 아세요?”
잠깐의 정적 뒤에 그가 말했다.
“당연히 알지. 나 지금 니 집 앞에 있다.”
그날 밤,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문을 잠그고, 불을 끄고, 숨을 죽였다.
밖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나를 향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다음 날 경찰서에 갔다.
수사관은 차분하게 말했다.
이런 범죄는 현장에서 잡히지 않으면 처벌이 어렵다고.
설령 처벌이 되더라도,
보복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현실적으로는 이사가 가장 안전합니다.
전화번호도 바꾸시고요.”
법은 나를 보호해 주지 못했다.
경찰은 솔직했다.
그래서 나는 도망치는 쪽을 선택했다.
이사를 했다.
전화번호를 바꿨다.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번호를 줬다.
경찰이 시킨 대로,
혹시 누군가 내 번호를 물어보면
“누가 물어봤는지”를 꼭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하면,
누군가 선을 넘는 순간
그 사람을 특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건 예방이 아니라 생존 요령이었다.
시간이 지나 사건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밤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
알 수 없는 번호,
문 앞에서 나는 작은 소리들.
밤길을 걷거나 집 현관 앞에 섰을 때조차
주위를 둘러본다.
스토킹은 폭력이지만
흔적을 남기지 않는 폭력이다.
그래서 피해자는 늘 이렇게 말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무너졌다.”
오늘의 판결 기사를 보며
나는 안도하지도, 통쾌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법은 문장을 만들었지만,
그 문장에 담기지 않는 공포는
여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공포는
형량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를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기록하기 위해서다.
스토킹은
“그럴 수도 있지”가 아니다.
“무시하면 끝난다”도 아니다.
그건
사람의 삶을
조용히, 오래,
안쪽에서 부수는 범죄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법보다 먼저 몸으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