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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r 25. 2024

밀라노의 한국인 프리마돈나, 이인재 성악가를 만나다.1

이탈리아 사람에게 성악을 가르치는 한국인

화려한 무늬의 기모노를 입고 품에 아이를 안은 채 오열하는 여인.

그녀의 사진을 한동안 쳐다봤다. 분명 아는 얼굴인데 작품 속 그녀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진을 뚫고 그녀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저 심장 안쪽에 흐르는 피와 폐에 흐르는 공기가 하나가 되어 온몸을 휘감아 토해대듯 나오는 고음의 소리. 한국 말로는 득음이라 하고, 이탈리아 말로는 벨칸토(belcanto)라 한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소리도 더욱 성숙되어 가는 걸 느껴요."


나는 그것이 나이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밀라노에서 20년을 넘게 살며 경험한 그녀의 열정과 사랑, 삶에 대한 고뇌와 애환이 그녀의 목소리에 고스란히 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녀의 삶이 궁금해졌다. 나는 끌리듯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밀라노에 사는 사람들 프로젝트의 첫 인터뷰이, 오페라의 프리마돈나, 이인재 성악가이다.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 중



따뜻한 봄날, 밀라노에서 핫플레스로 유명한 나빌리의 일식당에서 그녀를 만났다. 밀라노 속 일본처럼 아기자기한 일본제품을 전시하고 판매도 하고,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일본 음식도 파는 곳이다.

“와, 여기 진짜 일본 같네요. 제 동생이 일본에 살아요.”

우연히 잡은 장소였는데 달뜬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그녀를 보니, 뿌듯하다.


전시장에서 구경을 하다 오픈시간에 맞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라세이마세~”

우리를 향해 직원들이 인사를 한다.

“여긴 진짜 일본식당이네요.”

인터뷰 장소, Tenoha Milano

카레우동을 야무지게 다 먹고, 티라미수와 에스프레소까지 먹은 후 드디어 수첩과 펜을 꺼내며 말했다.

"자 이제 인터뷰를 시작해 볼까요?"

"제가 뭐, 인터뷰할 만한 게 없는데요? 특별한 게 없어요."

"원래 자기는 모두 평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타인이 보기엔 정말 특별하거든요. 인재 선생님이 딱 그래요. 제가 보기엔 정말 특별한 삶을 살고 계시거든요. 저는 그런 분들을 보면 막 글을 써보고 싶어 져요."

"와.... 갑자기 떨리는데요? 이런 거 처음 해보는 일이에요."

"자,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선량 : 밀라노에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인재 : 20년 정도 된 것 같아요. 2002년에 왔으니까, 20년이 넘었네요.


선량 : 와.... 저는 그때 병원에 취직했었어요. 원래부터 성악가가 꿈이었나요?


인재 : 아니에요. 저는 고 2 때 성악을 시작했어요. 예고를 나온 것도 아니었고요. 성악하는 친구들 중에는 어렸을 적에 합창단으로 시작한 친구들도 꽤 있어요. 그 친구들에 비하면 늦게 시작한 거죠.


선량 :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오디션 보는 친구 따라갔다가 소속사 사장님 눈에 띄어서 걸그룹에 데뷔했다는 친구들 말이에요. 그게 떠오르네요.


인재 : 오, 맞아요. 저도 그냥 찬송가를 불렀는데 제 노래를 들으신 모대학 교수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넌 왜 성학을 안 하니?" 그때 시작했어요.


선량 : 노래와 운명이었군요. 밀라노에선 학교를 얼마나 다니셨어요?


인재 : 저는 5년 다녔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수료증이 나와요.


선량 : 밀라노 학교의 수료증만 있으면 한국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건가요?


인재 : 아니에요 사실은 그때부터 시작이에요. 이탈리아에서 5년 정도 학교를 다니고 수료증을 받으면 그제야 소리가 어떤 건지 어렴풋이 알게 돼요. 벨칸토라고 하죠. 진짜 좋은 나의 소리를 찾기 위한 여정의 시작이에요. 수료증은 내 이력서에 넣을 한 줄일 뿐이죠. 그 한 줄에 내 소리와 이곳에서의 삶을 다 담기엔 역부족인 것 같아요. 그리고 유학생들이 워낙 많다 보니 그게 있어도 성공하긴 힘들고요. 사실 그걸 이해해 주시는 부모님이라면 조금 더 공부해 보라고 하시지만, 이해를 못 하시는 분들은 "졸업했으니, 이제 그만 들어와라"하시죠. 유학비용이 만만치 않잖아요.


선량 :네. 그래서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도 많은 것 같아요.


인재 : 맞아요. 뭐, 저희 때는 돈이 없다는 게 정말 돈이 없다는 말이었는데, 요즘 MZ들은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돈이 없어도 자신의 몸을 위한 피트니스 클럽은 꼭 다니는 친구들이에요.


선량 : 아.... 저희는 돈이 없으면 그런 것부터 모두 끊는데 말이죠. 세대가 참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인재 : 맞아요. ㅎㅎㅎㅎㅎ


선량 : 한국 유학생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도 성악을 가르치신다고 들었어요. 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한국 사람에게 배우는 이탈리아 사람들이라니.... 저는 사실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이 나라 사람들, 자존심이 얼마나 센 줄 아니까요. 게다가 이탈리아가 성악의 본고장이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성악을 가르치신다는 말을 듣고, 정말 놀랐어요. 그 시작이 쉽진 않으셨을 것 같은데.... 이 일을 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인재 : 한.... 15년 된 것 같아요.


선량 : 정말 오래 하셨군요.


인재 : 네. 제가 그때 한국에 들어가려고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안정적인 일이 없으면 아무래도 버티기 힘들잖아요. 그때 절 가르쳐주시던 마에스트라(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평생교육원에서 성악을 가르치는 일이 있으니 한번 해보라고요. 첫날, 피아노 앞에 앉아서 학생들을 기다렸어요. 여기 학생들은 다들 아마추어 학생들인데요, 변호사도 있고, 의사도 있고, 지역에서 사업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문을 열고 딱 들어왔는데 왠 동양 여자가 앉아 있는 걸 본 거죠. 얼마나 놀랐겠어요? 절 위아래로 훑어본 후 하는 말이,

"아.... 네가 스텔라야?"

이러는 거예요. 그때 얼마나 떨렸는지 모르겠어요. 잘하던 이탈리아 말도 막 안 나오고요.


선량 : 그런 환경에서 10년을 일하셨네요. 정말 대단하세요.


인재 : 그 사람들 입김이 정말 센대요. 제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강사를 교체할 수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 버틴 거 보면, 그래도 못하진 않았나 봐요.


선량 : 그만큼 가르치는 능력과 노래 실력이 되니까 가능한 일이겠지요.



자 이제 인재 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지금 남편 분도 성악가시잖아요, 부부성악가로 한 무대에 서시는 것도 정말 멋지신 것 같아요. 두 분의 무대를 직접 본 어느 분의 말에 의하면 정말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미 결혼해서 아이가 둘이나 있는 분이, "제가 좀 사랑해도 되겠습니까?"라고 하셨다던데.... 제가 두 분의 공연을 직접 못 본 게 너무 속상합니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부부성악가 < 송진헌 바리톤/ 이인재 소프라노>


인재 : 저희는 밀라노 한마음교회에서 만났어요. 제가 청년부 누나였지요.


선량 : 어머, 저희는 네팔 한인교회에서 만났는데 ㅎㅎㅎ 교회가 참 외로운 여럿 청년들 구제했지요.


인재 : 아, 그러셨군요.


선량 : 누가 먼저 고백하신 거예요?


인재 : 제가 했어요.


선량 : 어머, 정말요?


인재 : 사실은 남편이 엄청 헷갈리게 하는 거예요. 저한테 엄청 잘해주면서도 고백을 안 하는 거죠. 얘가 왜 이러나 했어요.


선량 : 여자친구처럼 잘해주는데 고백은 안 하다니.... 썸만 타신 걸까요?


인재 : 그러니까요. 제가 너무 답답해서 물어봤어요. 나 이제 한국 가야 한다고요. 엄마가 선 볼 남자들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내가 한국 가서 다른 남자 만나도 괜찮다면 상관없는 거고, 혹시나 마음에 걸리거나 싫은 마음이 든다면 날 좋아하는 거라고 말했죠. 한번 잘 생각해 보라고 했어요.


선량 : 어머, 그래서 어떻게 되셨어요?


인재 : 한번 만나보자고 하더라고요. 엄청 신중한 사람이거든요.


선량 : 그래서 결혼까지 하신 거군요.


인재 : 네. 맞아요.


선량 : 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참 신기한 일 같아요. 시기와 장소가 딱 맞아떨어져야 하고, 또 서로를 향한 감정이 통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나의 삶이 변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인재님은 지금의 남편 분을 만났셨기에 지금까지 밀라노에 사시면서 무대에서 노래를 할 수 있는 것이네요.



제가 아는 분들 대부분은 합창단에 들어가려고 시험을 많이 보시더라고요. 특히 밀라노의 라 스칼라(La scala) 합창단은 엄청 유명하고, 누구나 들어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죠. 일 년에 한 번 있는 라스칼라 합창단 시험을 위해 준비하는 유학생들이 꽤 많다고 들었어요. 라스칼라 본선에 오른 사람은 다른 합창단에서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말도 들었거든요. 그런데 인재님은 합창단이 아니라 솔로로 활동을 하시잖아요. 그 이유가 궁급합니다.


인재 : 네, 맞아요. 합창단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개인마다 원하는 걸 선택하는 것 같아요. 합창단에 들어가면 계약직으로 안정적인 수입과 일이 보장되죠. 하지만 무대의 주인공은 할 수 없어요. 저는 오페라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죠. 그런데 매번 시험에 빠져요. 프리랜서이다 보니, 수입이 안정적이지 못하죠. 그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무대에 서고 싶어도, 날 불러주는 곳이 많지 않으니까요.


선량 : 그렇군요.


인재 : 저는 학교 졸업한 후에 콩쿨을 계속 다녔어요. 오디션을 계속 보는 거죠. 그것도 하나의 경력이 될 수 있거든요.


선량 :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콩쿨이 무엇인가요?


인재 : 사실, 좋은 성적을 거뒀다기 보다도 가장 기억에 남는 콩쿨이 있어요. 제가 파이널까지 올라간 콩쿨이었는데요, 마지막에 떨어진 거예요. 정말 마음이 힘들었지요. 그런데 그때 심사위원 중에 한 분이 저에게 연락을 주셨어요.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년 12월 22일~1924년 11월 29:  이탈리아오페라 작곡가로 이탈리아가 낳은 최대의 오페라 작곡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표작으로 라 보엠, 토스카, 나비 부인 등이 있다) 100주년 기념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아서 공연을 할 수 있었지요. 가장 힘든 순간에 찾아온 행운이었어요. 저는 이 일이 가장 뿌듯하고, 자랑하고 싶은 일이에요.

푸치니의 작품, 나비부인 오페라 공연 중


선량 : 정말 멋진 일이네요. 인재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밀라노에서 성악을 하고, 무대에 서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직장인들도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지만, 이렇게 내가 가진 실력을 사람들 앞에 보이고 인정을 받아야 살아남는 이 일이 마치 백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겉으로 보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에선 열심히 발을 구르는 것처럼요.

사실 저도 글을 쓰면서 매번 좌절했다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주길 바라고, 또 누군가의 눈에 들기를 바라면서요.

정말 열심히 기획하고 준비해서 낸 책도, 인지도 있는 유명인들이 쓴 책 앞에선 속수무책이거든요. 누군가의 눈에 들고,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성악가의 삶이 마치 책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 2편에는 인재 님의 꿈과 비전 그리고 현실적인 고뇌에 대한 내용을 나눌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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