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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r 28. 2024

밀라노의 한국인프리마돈나, 이인재 성악가를 만나다. 2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성악을 가르치는 한국인

꿈을 좇아 사는 삶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누구나 꿈을 안고 살지만, 모두가 꿈을 좇아 살진 않는다. 지금 내 눈앞의 현실이 꿈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라는 울타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남편이 생계를 책임져주지 않았다면, 과연 내가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작가라는 꿈을 품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나는 진작에 그 꿈을 버렸을 것이다.

그렇기에 꿈과 현실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면서도 결국엔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꿈을 좇아 나아가는 그녀의 삶이 더욱 고결하게 느껴진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내가 얼마나 무대를 사랑하는지를 떠올렸어요."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의 입과 다르게 두 눈은 붉게 물들었다. 고뇌가 가득 서린 두 눈이 그동안의 삶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성악가부부 [송진헌 바리톤, 이인재 소프라노]


선량 : 설 수 있는 무대가 계속 있는 건가요?


인재 : 아니에요. 나를 불러주는 곳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내 프로필을 돌리면서 말이죠.


선량 : 출판사에 내 원고를 투고하는 일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정말 거절을 많이 받거든요.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글을 써요. 특히 출판 관계자의 눈에 띄기를 바라지요. 하지만 그런 일은 저에게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ㅎㅎㅎ 그래도 여전히 다양한 글을 쓰며 시도하고 있는 이유는, 글 쓰는 일을 사랑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인재님도 같은 마음이시겠죠?


인재 : 네. 맞아요. 저도 정말 무대와 노래를 사랑해요. 먼저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하지만 공연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아요. 아무래도 공연이 없으면 수입이 없기 때문에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선량 : 그렇군요. 평생교육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외에 또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가요?


인재 : 학생들에게 개인 레슨을 해주고 있어요. 직접 학생들의 집에 찾아가서 레슨을 해주지요. 그런데 요즘 레슨이 좀 많아져서 여러 곳을 직접 다니다 보니 몸이 많이 힘들어지더라고요.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지.... 싶었어요. 그냥 모두 내려놓고 싶었지요. 그런데 문득, 레슨이 얼마 없어서 수입이 얼마 없을 때 제가 했던 기도가 떠오르는 거예요.

"하나님, 제발 레슨이 더 많아지게 해 주세요."

제가 그렇게 기도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거예요.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금은 몸은 힘들어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선량 : 그런데 정말 힘드실 것 같아요.

사실 작가가 되는 일도 마찬가지인데요, 책을 출간하고 나면 작가들이 인세로 먹고 살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 인세가 정말 얼마 되지 않아요. 부끄러워서 얼마 받는다는 말도 못 하겠어요. 물론 유명한 작가님들은 몇만 부씩 책이 나가니까 인세도 많이 받겠죠. 암튼,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요. 대신 저도 강의를 해요. 내가 직접 만든 커리큘럼으로 사람들을 모집하고, 강의를 하면서 수입을 만들고 있어요. 그런데 강의를 하면 할수록 내 글을 더 쓰고 싶어 진다는 아이러니가 있더라고요. 인재 님도 그러시지 않을까 싶네요.


인재 : 맞아요. 규칙적인 수입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삶이 불안정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저희에게도 여러 번 유혹이 있었어요. 남편에게 안정적인 월급과 차를 지원해 주겠으니 본인 회사로 오라고 했었지요. 정말 고민이 많이 되었어요. 그런데 직장에 다니면 음악을 할 수 없게 되잖아요. 저희는 안정적인 일보다 저희가 사랑하는 음악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먹고살 돈은 벌어야 하니, 주중에 남편이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어요.


선량 : 그 선택이 정말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일과 꿈. 그 두 가지 꿈을 모두 잡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준비 중인 공연이 있으신가요?


인재 :  네, 5월과 11월에 공연이 있어요. 5월에는 쎄그라떼(segrate) auditorium에서 저희 부부 포함해서 5명이 concerto di primavera (봄 콘서트) 연주를 하고요, 11월에는 푸치니 추모 100주년 기념 오페라갈라를 준비하고 있어요. 오페라갈라는 푸치니의 작품 "오페라 라보엠, 쟌니스키키, 나비부인, 수녀안젤리카, 토스카, 투란도트" 이렇게 6개 작품으로 꾸민 연주인데요, 저는 그중에서 나비부인과 Opera Suor Angelica (수녀 안젤리카)를 해요.

선량 : 사실 제가 오페라를 하나도 몰라요. 얼마 전에 본 오페라의 유령만 아네요.... 수녀 안젤리카 (Opera Suor Angelica)는 어떤 내용인가요?


인재 : 어느 귀족 집안의 여인이었던 안젤리카가 사생아를 낳아요. 아이를 낳자마자 공작부인에게 아이를 맡기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수녀원으로 들어옵니다. 안젤리카는 아이가 잘 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몇 년 후에 그 공작부인이 안젤리카를 찾아와요. 이때 안젤리카가 자기 아들의 안부를 물어요. 그런데 아이가 병에 걸려 2년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돼요.

선량 님은 어떠실 것 같아요? 잘 크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아기가 2년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마음이실 것 같아요?


선량 : 음.... 저는 배신감이 들 것 같아요. 내가 참회하기 위해서 아이까지 떼어놓고 수녀원에 들어갔는데 그 아이가 살지 못하고 죽었다면, 너무너무 화가 날 것 같아요. 억울하고 슬픈 건 당연한 거고요. 분노가 일지 않을까요?


인재 :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더라고요. 슬픔을 연기할 수는 있겠는데 아이의 죽음을 알게 된 엄마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연출자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표현해 달라고 하는데 저는 아이가 없으니까요.


선량 : 오페라는 노래만 잘 불러서 되는 일이 아니군요. 이건 연기와 노래를 함께 해야 하는 종합예술이네요. 와....


인재 : 맞아요. 학교에서도 연기를 따로 배워요.


선량 : 아, 그렇군요. 처음 알았어요. 정말 대단하네요.

이번 공연은 어떻게 하게 되신 건가요?


인재 : 작년에 저희 부부가 협회를 만들었어요. 바로 SOS(Associazione Musicale Sounds of Sharing)인데요, 누군가가 우리를 불러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이제는 우리가 직접 공연을 준비해서 무대에 올리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희 말고 멤버가 더 있고요, 이탈리아 친구 한 명이 행적인 일을 함께 해주고 있어요. 이번에는 저희가 쎄그라 떼(Segrate) 도서관 2층에 있는 auditorium에 직접 찾아가서 먼저 제안을 했어요.


선량 : 와.... 너무 기대돼요. 지난번 나비부인 공연은 제가 시간이 안 돼서 못 갔었는데 정말 정말 아쉬웠어요. 이번엔 저도 꼭 가겠습니다. 인재 님의 꿈과 열정이 담긴 공연을 제 두 눈으로 꼭 보고 싶습니다. 오페라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는데 인재님 덕분에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네요.



지금까지 밀라노에 살면서 가장 힘드신 점은 뭐였나요?


인재 : 음.... 행정적인 게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직접 협회를 만들어서 활동하려다 보니, 행정적인 게 정말 많더라고요. 서류도 많고, 여기저기 제출해야 하는 것도 많고요. 저희가 하는 일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잘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선량 : 여기가 행정적인 게 정말 복잡하고 느리죠. 이해가 되네요. 밀라노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뭘까요? 좋은 점이 있으니 20년 넘게 살고 계신 거겠죠?


인재 : 아무래도 이탈리아가 오페라의 본고장이잖아요. 이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선량 : 인재님의 오페라 공연을 좀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끝으로, 이 협회를 통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요?


인재 : 음.... 저희는 SOS 협회를 통해 다양한 노래를 여러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그리고 천지창조, 손양원 목사(여수 애양원에서 나병환자를 사랑으로 돌보고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사랑으로 끌어안아 양자를 삼음), 주기철 목사( 목사이자 독립운동가로 3.1 운동에 참가한 후 부산, 마산, 평양에서 목사로 활동하며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항일운동을 계속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검거되어 복역 중 옥사함)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들어서 이곳, 이탈리아에서 공연하는 것이 저희의 꿈이에요. 오페라를 연출하는 친구와 계속 이야기 나누고 있답니다. 한국인의 정서를 이곳 이탈리아에 어떻게 표현할지가 관건인 것 같아요.


선량 : 정말 멋지네요.

이제 정말 마지막인데요, 성악을 하고 싶거나 밀라노로 유학을 오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인재 : 음.... 해주고 싶은 말은 진짜 많지만, 이거 하나 꼭 말해주고 싶어요.

노래에 미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시작도, 유학도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좀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시작했다가 포기하거나 다른 길로 가는 사람들 정말 정말 많이 봤어요. 노래하며 먹고 산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고,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된 일이 아니니까요. 어설프게 시작하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되니니까요. 노래에 정말 미쳐야 그나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 같아요.


선량 : 그 일을 인재 님이 하고 계시군요. 노래에 미치신 거네요.


인재 : ㅎㅎㅎㅎ 맞아요.



선량 : 이렇게 시간 내주시고, 귀한 이야기 나누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제 주위에는 성악하는 사람도, 예술하는 사람도 없다 보니, 정말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였어요.

밀라노에 산지 저는 이제 겨우 2년이 됐는데요, 정말 많은 유학생들이 왔다 가는 걸 봤습니다. 다들 한국에서는 인정받고, 노래를 잘해서 유학을 왔겠지만, 이곳에서의 삶이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렇게 자신의 꿈을 찾아 밀라노까지 와서 학교를 다니고,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노래를 부르는 일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비록 그 과정이 어렵고, 또 끝까지 가지 못할지라도 분명, 이곳에서의 경험이 또 다른 경험으로 이끌어 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노래에 미쳐서 밀라노로 유학 왔다가 20년 넘게 돌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노래에 미쳐 살고 있는

한국인 프리마돈나 이인재 성악가와의 인터뷰였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길, 그녀는 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사실은 최근에 여러 가지 일로 많이 지쳐있었다고 했다. 이제 모든 걸 포기하고,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는 그녀는 이번 인터뷰 덕분에 잊고 있었던 초심을 떠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 또한 그녀에게 무척 고마웠다. 화려한 무대 위의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을 텐데, 무대 뒤의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까지 모두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진정성이라 생각한다.



 모든 삶에는 명암이 존재한다. 화려하고 좋아 보이기만 한 모습과 침울하고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이모습도 저모습도 모두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삶은 더욱 다채로워지는 것 같다.  


무명은 무명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했던가?

무명작가인 나는 무명 오페라 가수, 인재 님의 삶을 글로 쓰는 동안, 더욱 그녀를 응원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그녀의 오페라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 날을 소망하며,

이 글을 통해 그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Brava!!"



이인재 성악가님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더 많은 공연 사진과 연주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려요.


@stella_injae


https://www.instagram.com/stella_injae?igsh=bTJlZm9iZDJkMG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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