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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n 06. 2024

꽃으로전하는행복, 밀라노의 한국인플로리스트 김희애. 1

밀라노에 사는 사람들 세 번째 인터뷰

지난 4월, 13주년 결혼기념일 날 남편이 꽃화분 4개를 사주었다. 금방 시드는 꽃다발에 비해 화분은 오랫동안 곁에 둘 수 있으니, 이런 기념일에 꽃다발보다 꽃화분을 선호하는 편이다.

흰색, 보라색, 주황색, 노란색. 꽃 이름도 모른 채 그저 봄과 닮은 화분을 몇 개 골라 베란다에 두었다.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화분을 물을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꽃이 시들시들 말라가더니 급기야 꽃잎은 다 떨어지고, 초록색이던 이파리가 노랗게 시들어버렸다.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

우리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화분을 저세상으로 보내고야 말았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화병에 며칠 꽃아 두었다가 갈 때가 되어 휴지통에 버려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꽃다발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일주일에 한 번, 화분의 크기만큼 물을 잔뜩 준 후에 물을 잘 빼줘야 해요."

"네? 물을 잘 빼줘야 한다고요?"

"네. 그래야 뿌리가 썩지 않아요. 화분 받침에 물이 흥건하게 남아있으면 안 돼요."

"아.... 그냥 물만 주고 화분 받침에 물이 고여있어도 내버려두었는데....."


지금껏 정말 많은 화분을 키웠지만, 화분받침에 고여있는 물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우리 집에만 들어오면 식물들이 죽어 나갔던 것일까?


"선생님 가게에서 가져온 식물들은 이상하게 정말 잘 자라더라고요. 꽃다발도 1주일 넘게 살아 있던데요?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일반 마트에서 산 꽃다발은 이틀이면 시들어서 버려야 했거든요.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특별한 비결은 없고요, 사실 좀 시들어 보이는 꽃은 제가 팔지 않아요. 저는 꽃을 많이 파는 게 목적이 아니라 저희 가게에서 꽃을 사는 사람들이 그 꽃으로 인해 행복해지길 바라거든요."


마음에 품고 있던 꽃과 사람에 대한 비전을 말하는 그녀의 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어떻게 해서 낯선 도시 밀라노에 꽃가게를 열게 된 것인지 몹시 궁금하다.


꽃을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꽃을 팔며 행복을 전하는 한국인 플로리스트 김희애 선생님을 만났다.



선량 : 선생님, 밀라노에 사신 지는 얼마나 되셨지요?


희애 : 2017년 11월에 왔으니, 6년 반 정도 되었네요.


선량 : 코로나 전에 오셨군요. 처음부터 꽃집을 하신 건 아니실 텐대요. 처음에 밀라노에 어떻게 오셨나요?


희애 : 남편이 유학을 오면서 함께 오게 되었어요.


선량 : 아~ 남편 분이 성악을 전공하셨군요.


희애 : 네. 처음부터 성악을 한 건 아니고요. 우여곡절이 좀 있어요. 원래는 실용음악을 전공했었는데요, 성대결절 치료를 받다가 성악전공으로 바꾸게 되었죠. 저는 그때 꽃집을 하고 있었는데요, 가게가 엄청 잘 되고 있었어요.


선량 : 아니, 꽃집이 잘 되고 있었는데 그걸 접고 남편 따라 이탈리아에 오신 거네요? 그게 가능하셨나요? 전 좀 억울할 것 같은데..... 저는 단 한 번도 해외생활을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남편이랑 결혼한 후엔 제 의사와 상관없이 남편이 바라던 해외생활을 시작했고 10년 넘게 해외에서 살고 있거든요. 처음엔 그게 좀 많이 억울했었어요.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삶이라 생각했거든요. 직장도 못 다니고, 돈도 못 버니 자존감은 또 얼마나 낮아졌는지 몰라요. 물로  지금은 그 덕분에 다른 장점들을 누리고 있으니 원망보다는 고마움이 크지만요. 선생님은 어떠셨어요?


희애 : 교수님 세 분이 남편에게 유학을 권유했다고 해요. 남편이 자랑하듯 그 말을 했어요. 유학을 가자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그때부터 고민이 되는 거예요. 유학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가야겠다는 마음이 확 서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가게를 정리했지요.


선량 : 선생님도 실행력이 장난 아니시네요. 한번 마음먹으면 물소의 뿔처럼 전진하시는군요.


희애 : 그러는 편인 것 같아요. 뭔가 큰 일을 결심할 때는 제가 주도하는 편이죠. 대신 디테일이 부족해요. 그건 남편이 해주고 있어요.


선량 : 요즘은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이 잘 알려져 있지만, 예전엔 꽃집 사장님은 그냥 꽃을 파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지요. 잘 나가던 꽃집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네요. 꽃집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희애 :  사실 저는 서양미술을 전공했어요. 졸업반일 때 어느 미술관에 계약직으로 취업이 되었었는데요, 첫 달 월급이 40만 원?인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돈으론 적금도 제대로 넣지 못할 것 같았죠. 그래서 고민하다가 미술학원에 취직을 했어요.


선량 : 미술을 전공하셨군요. 미술학원이라면 정말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희애 : 네, 맞아요. 첫 직장이기도 했고 쉽지 않았어요. 근데 수업이 아이들 학교 끝나는 시간에 시작해서 오전 시간은 좀 여유로웠어요. 그때 이것저것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기도 했어요.

근데 학원의 원장님을 보니 조금, 마음이 쓰리기도 하고 제 학원을 갖고 싶더라구요. 일은 내가 다 하는데 돈은 원장님이 다 버시고 난 원장님이 주는 월급만 받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직접 원장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친정 아빠한테 2천만 원을 빌려서 미술학원을 차렸어요.


선량 : 와, 대박. 학원을 직접 차리셨다고요? 아니, 이렇게 말로만 듣고 있으니 학원 차리는 게 그냥 보통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나중엔 아버님께 빌린 돈을 값으셨나요?


희애 : 네, 다 갚았어요. 부모님도 넉넉한 형편이 아니셨는데 제가 꼭 갚겠다고 하니까 빌려주셨지요.


선량 : 딸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해 주고 믿어주는 부모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군요. 그 학원도 왠지 잘 됐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희애 : 네. 잘 됐었어요. 그런데 일보다도 학부모님들과의 관계가 힘들더라고요. 그때 제가 겨우 20대 중반이었거든요. 대학 막 졸업한 젊은 여자가 학부모의 니즈를 어떻게 다 알겠어요? 그때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적에 교회를 다녔었지만, 믿음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때즈음에 다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힘든 마음에 매일 기도를 했었지요.


선량 : 미술 학원을 운영하시다가 꽃집은 또 어떻게 하게 되신 거예요?


희애 : 그게 좀 웃긴데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목사님이 서 계시는 강대상 옆에 있는 꽃꽂이가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그때 제 마음에 "꽃꽂이를 내가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스스로도 그게 너무 어이가 없는 거죠. 꽃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데 어떻게 그 일을 하겠어요? 근데 정말 신기하게도 꽃을 배울 수 있는 길이 하나, 둘 열리는 거예요.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꽃집에서 일해볼 생각 있느냐고요. 그 연락을 받고 꽃을 배우기로 결심을 했지요. 그래서 그 지역에서 가장 큰 꽃집에서 꽃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으니까 처음엔 힘들어서 울면서 배웠어요. 그렇게 꽃집을 차리게 되었죠.


선량 : 아니, 저는 40이 넘었지만 단 한 번도 사업이란 걸 해본 적도 없고, 사업을 할 생각도 안 해봤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20대에 이미 두 가지 사업을 해보신 거네요? 경험치가 장난 아니신대요?


희애 : 네. 정말 많은 경험을 했어요. 근데 밀라노에서 꽃집을 하는 건 또 다른 세상이었어요.


선량 : 정말 그럴 것 같아요. 사실 이탈리아에서 외국인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서류와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선뜻 엄두가 나지 않잖아요. 그런데 밀라노에 오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업을 시작하셨네요.


희애 : 사실 처음 밀라노에 왔을 때부터 꽃집을 하고 싶었어요. 여기 와서 꽃다발이나 꽃꽂이를 보니 너무 안 예쁜 거예요.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꽃집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다들 말리시더라고요. 망한다고요. ㅎㅎㅎㅎ 근데 저희는 사업하면서 모든 서류준비를 브로커를 쓰지 않고 저희 남편이 다 했어요. 남편이 정말 디테일한 'INTP’거든요.


선량 : 어, 저희 남편도 인프피 같은데.... 저희 남편보다 한수 위인 것 같아요. 그런 디테일은 또 부족합니다. ㅎㅎㅎㅎ  

들어보니 두 분의 성향이 완전히 다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 사업을 할 때나 함께 살아갈 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 같아요.  마치 두 발 자전거처럼 말이죠. 앞에서 방향을 잡는 건 앞바퀴지만, 정작 자전거를 움직이는 건 뒷바퀴잖아요. 겉으로 보기엔 앞바퀴의 역할이 클 거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뒷바퀴가 없으면 자전거가 굴러가지 않죠. 그리고 앞, 뒤 바퀴를 연결해 주는 체인이 없다면 자전거는 움직일 수 없죠. 그 체인의 역할을 하는 게 결혼이 아닌가 싶습니다. 체인이 빠지지 않도록 서로 기어와 속도를 맞춰서 달려야 하는 건 기본이겠죠?


남편의 유학으로 밀라노에 오셨는데 어떻게 지금의 꽃집, 베아투스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물론 처음부터 꽃집을 열고 싶다는 생각은 하셨지만 주변분들이 모두 말리셨다면서요.....


희애 : 제가 밀라노에 와서 딸, 리아를 낳았어요. 리아가 두 돌이 지났을 때 벌어서 가지고 온 돈이 다 떨어졌기도 했고, 또 남편이 학교에서도 연장이 안돼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죠. 그때 리아를 안고 거리를 걷는데 이렇게 돌아가면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밀라노에 와서 애만 낳고 키웠지, 뭐 제대로 한 게 없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깨달았어요. 제가 밀라노를 정말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어요. 이대로 돌아가면 안 되겠다고요. 꽃집을 해야겠다고요.


선량 : 이번에도 선생님께서 밀라노에 남기로 주도를 하셨군요!!


희애 : 저희가 가게 자리를 알아볼 때도 다들 외국인을 기피하던 때였어요. 코로나 때 많은 외국인들이 밀린 월세도 내지 않고 도망치듯 떠나버렸거든요. 근데 정말 신기하게도 주인 할머니를 만났는데 저희 세 사람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아시아 사람이니까 음식 가게를 할 줄 알았는데 꽃집을 한다고 하니, 너무 좋으셨대요. 요즘도 맨날 오셔서 가게에서 수다 떨고 가세요.


선량 : 와..... 정말 멋지세요. 일이 정말 순탄하게 진행된 것 같네요.

희애 : 아, 코로나 직전에 저희가 사업자를 냈어요. 리아 돌때문에 한국에 갔다가 한 달 있다 돌아오려고 했는데 코로나가 심해져서 거의 6개월 동안 못 들어왔었어요. 정말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몰라요.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2021년 5월에 가게를 얻었지요.


선량 : 코로나가 때론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시련을 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근데 생각해 보니, 언어의 문제는 없으셨나요? 저는 지금 이탈리아에 온 지 2년 반 정도 됐는데요 여전히 말을 잘 못해서 의사소통이 어렵거든요. 눈치코치로 그냥 대충 알아먹고 살고 있어요. 그런데 꽃집을 하려면 고객을 직접 만나야 하는데.... 이탈리아어를 잘하셨나요?


희애 : 사실은 저도 처음에 밀라노 와서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이탈리아어 배운 게 다였어요. 아주 기본적인 것만 배웠죠. 근데 아이 낳고 키우는 동안 이탈리아어로 말할 사람이 없으니 늘지 않았죠. 가게를 시작하고 가게 문이 열릴 때마다 얼마나 긴장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리아가 항상 가게에 함께 있었어요. 사람들이 가게 들어왔다가 리아를 보고 말 걸고, 귀여워하고 관심을 갖고 있으면 그때 저는 사람들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했죠. 그리고 제가 말을 잘 못하는 걸 아니까 사람들이 좀 더 배려를 해줬어요. 좀 더 천천히 말해주기도 하고요. 말은 잘 못해도 사람들의 니즈를 케취하려고 노력했지요. 다행히도 사람들의 요구를 듣고 제가 만들면 다들 만족해하시니까요.


선량 : 언어로 소통이 잘 되더라도 사람들의 니즈를 바로 알고, 또 그걸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내는 일은 다른 영역인 것 같아요. 선생님은 그런 센스, 감각이 있으셨나 봅니다.

그런데 가게를 열었다고 해서 가게가 바로 막 잘 되는 건 아니잖아요. 홍보도 해야 할 텐데, 그런 건 어떻게 하셨어요?


희애 : 이탈리아 사람들은 익숙한 길을 좋아해요. 항상 가던 가게, 항상 가던 길로만 다니는 거죠. 그래서 꽃집을 차린 지 3년이 되었는데도 이 지역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꽃집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래서 홍보가 쉽지 않았어요. 처음엔 인스타그램으로 홍보를 했어요. 그래도 처음엔 손님이 많진 않았어요. 다들 천천히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요. 그리고 인스타그램으로 홍보를 하고 있는데요, 거기 통해서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어요.


선량 : 제 친구 한 명도 생일날 베아투스 꽃다발을 선물로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나라에 사는 친구가 인스타그램으로 꽃바구니를 주문해서 배달을 해줬다고요.



희애 : 맞아요. 그렇게 멀리 사는 가족, 친구, 지인들 또는 사업 파트너들이 종종 주문을 해주세요. 한번 꽃을 받아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를 해주고 또 주문을 하고, 한번 꽃을 주문해 본 사람들이 다음에 또 주문해 주시고. 이렇게 입소문이 점점 나더라고요. 저는 홍보가 다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정성스럽게 만든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받아본 고객이 그것에 만족을 하면 저절로 홍보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꽃다발 하나에도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게 곧 홍보거든요.


80송이 장미 꽃바구니


선량 : 너무 좋은 마인드를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앞에서 요란하게 광고를 하고 마케팅을 해도 정작 상품이 별로면 사람들은 외면하게 되어있거든요. 얼마 전부터 온라인 쇼핑 사이트 광고가 엄청 나오는데요, 그냥 보기엔 제품이 너무 좋아 보여서 몇 번 주문을 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제품이 형편이 없는 거예요. 그 뒤론 그 사이트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 있어요. 희애 선생님의 베아투스는 정반대의 홍보를 하고 계시는 거네요.


사실 저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잘 모릅니다. 꽃을 만지는 직업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요,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희애 : 저는 아시다시피 베아투스(Beatus Flower)라는 한인 꽃집을 운영하고 있고요, 가게에 오시는 손님들이 주문하는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를 만들기도 하고, 졸업식 때 학생들이 쓰는 화관을 만들기도 해요. 그리고 결혼식이나 각종 행사의 꽃장식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업과 파트너로 일하기도 해요. 작년에 밀라노 디자인위크 때 삼성과 함께 일했었는데요, 올해도 연락이 와서 함께 작업을 했어요. 너무 힘들었지만 하고 나니 뿌듯했죠.

지금 제 뒤에 있는 이 꽃장식도 제가 했어요.

2023년 밀라노 디자인위크 with 삼성
2024년. 디자인위크 with 삼성
결혼식 꽃장식


밀라노  Bei Yuan Hotpot 레스토랑



선량 : 어머, 이런 식당에서도 이런 꽃장식을 주문할 수 있군요. 정말 멋지네요. 기업과도 함께 일하신다니, 정말 멋지십니다.

희애 : 이런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 부담이 너무 많이 돼요. 기간도 오래 걸리고, 특히 기업과 함께 하면 공사장처럼 위험한 것들이 많거든요. 전 어딜 가도 리아를 데리고 가는데 이런 곳은 좀 위험하기도 하고, 먼지가 엄청 날리기도 해요. 그리고 내가 가진 영량보다 너무 큰 일인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해요. 그런데 그 일을 다 하고 나면 또 경험치가 쑤욱 올라가더라고요. 역량도 좀 더 넓어지는 것 같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도전해 보고 있어요.


선량 : 어딜 가나 딸, 리아와 함께 하시는군요. 그 일이 쉽진 않을 것 같아요. 플로리스트라는 일과 엄마라는 일이 잘 조화가 된다면 좋겠지만, 서로 상충할 때도 많잖아요. 그 사이에서 고민은 없으셨나요?


희애 : 자주 있었어요. 가게를 시작하고 리아가 항상 가게에 저와 함께 있었어요. 제가 리아에게 하는 말이 "리아야 좀 비켜봐, 리아야 저리 좀 가봐, 리아야 그것 좀 줄래?" 이런 말이었죠. 그게 너무 미안했어요. 항상 바쁜 엄마와 지내다 보니 아이도 제 욕구보다 엄마를 먼저 걱정하고 염려하더라고요. 아이스럽지 않은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 들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저희 가게를 찾은 사람들이 리아를 키운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작업을 하고 있으면 리아를 데리고 가서 젤라토나 빵도 사주고, 놀이터에서 함께 놀아주기도 하고요.

지금은 리아가 저를 많이 도와줘요. 리본도 묶어주고, 필요한 거 가져다주기도 하고요.


엄빠 예식 꽃장식 준비 중에 잠든 리아



선량 : 리아는 엄마의 앞과 옆, 뒷모습까지 보면서 자라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고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으신가요?


희애 : 저희 고객 중에 할머니 고객 한 분과 딸 2명이 모두 고객인 분이 계셨어요. 그런데 큰 딸이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난 거에요. 그때 저희 막 끌어 안고 울었어요…. 지금도 가끔 오셔서 딸 묘비에 둘 꽃을 해가세요. 그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선량 : 꽃집 사장과 손님으로 만나지만, 진심이

담긴 꽃을 전하는 순간, 사람 대 사람의 인간적인 관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정성과 진심을 꽃에 담으시니 그런 관계가 이어지는 것 아닌가 싶네요.


다음엔 밀라노 한인 꽃집, 베아투스 (Beatus Flower)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나누어 보겠습니다.


..



(2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밀라노에 사는 사람들 매거진은 다양한 이유로 한국을 떠나 밀라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이번 세 번째 인터뷰이인 김희애 플로리스트는 밀라노 동쪽 세그라떼(Segrate) 지역에서 Beatus Flower 라는 한인꽃집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https://www.instagram.com/beatus.flower_milan?igsh=MWkweG8ybTFjeWY2eg==


인스타그램을 통해 좀 더 다양한 소식과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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