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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ug 02. 2024

8월의 밀라노는요….

편지 할게요.

To. 대구


와르르 무너진  작가님의 하루는 요즘 어떤지 궁금합니다.

저희 아이들도 분명 그 시절을 보냈었는데요, 매일 무엇을 했었는지 기억이 까마득하네요. 10대인 우리 집 두 아이들은 온종일 집에 쳐 밖혀 있어요. 요즘 너무 더워서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거든요. 다행히도 밥만 잘 챙겨주면 그럭저럭 하루가 지나갑니다. 물론 아이들의 손엔 핸드폰이 들려있지만요. 공부 좀 하자고 잔소리를 하면, 어차피 개학해서 학교에 가면 하기 싫어도 공부해야 하고, 매일 시험이라 스트레스받는데 방학 동안만이라도 맘 편히 놀고 싶다는군요..... 아이들의 말에 "나중에 엄마 원망하지 마! 네가 안 한 거야!"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따박 따박 말대꾸하는 아이들이 괘씸하다가도 사춘기에 이 정도면 양반인 건가 싶기도 해요.


이래 저래 시간이 흘러 어느덧 8월이네요. 요즘 밀라노 기온은 33도를 웃돌아요. 해가 아주 쨍~~ 하답니다. 다행히 습하진 않아서 그늘에 앉아있으면 참을만합니다.

밀라노에는 에어컨이 없는 집이 많아요. 여긴 기본 50년 이상 된 집이 많거든요. 10년 된 집은 새 집이나 마찬가지랍니다. 오래된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려면 어디 어디에 신고를 해야 한대요. 절대 벽을 뚫어선 안 되는 집도 있다고 해요. 어떤 집은 에어컨을 아예 설치를 못하게 한대요. 이탈리아의 오래된 집들이 여전히 건실한 이유인 것 같아요. 다행히도 저희 집은 지은 지 15년 밖에 안 돼서 에어컨이 있답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전 요즘 꽤 규칙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새벽에 일어나 성경을 읽고, 남편을 출근시킨 후엔 안방으로 들어가 글을 씁니다. 아이들이 일어나 배고프다고 하면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주고요,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12시쯤 되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공원으로 나갑니다.

가장 더울 때 저는 한 시간 동안 열심히 걸어요. 온몸에서 땀이 흐르다 못해 땀띠가 나지만, 이렇게라도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야 하루가 무사히 가더라고요. 덕분에 제 몸은 새까맣게 탔답니다. 예전 같았으면 몸이 타지 않게 가리고, 선크림을 덕지덕지 발랐을 텐데, 지금은 까맣게 그을린 제 팔과 다리 위로 선명하게 남아있는 운동복 자국이  꽤 멋지게 보여요. 저는 이제야 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살은 안 빠질까요???)


지난주에 저는 친한 언니와 함께 밀라노 시내에 갔었어요. 아침 9시에 집에서 나갔다가 오후 3시에 들어왔으니, 이 정도면 엄마의 일탈이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밀라노 시내에는 스타벅스 리저브가 있어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스타벅스 매장인데요. 이곳에는 굉장히 큰 로스팅 기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로스팅한 커피를 포장해서 유럽 전 지역으로 보낸다고 해요. 이곳 스타벅스는 여행자들에게 필수 코스가 되었는데요, 다른 카페에선 마실 수 없는 아이스 음료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행자들을 이한 컵이나 텀블러 같은 굿즈도 많이 있고요. 밀라노에 사는 사람들은 이곳에 잘 오지 않지만, 가끔 여행자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방문하면 기분전환이 된답니다.

저는 이곳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언니와 1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 언니는 밀라노에 산지 20년이 되었는데요, 2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을 만났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왜 아직도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남아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어요. 그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제가 경험했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힘듦과 어려움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비교할 수 없는 일이지만요.

저는 이번에도 그 언니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글을 좀 써보세요. 지금까지 밀라노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글로 써보시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제 일탈은 이렇게 '글쓰기 권유'로 끝났답니다. 우린 정말 어쩔 수 없는 글쟁이들인가 봐요.



작가님께서 언급해 주신 일만 시간의 법칙에 저의 시간을 헤아려 보았어요. 글을 쓰기 시작한 지 5년이 조금 넘었으니, 일만 시간 중 딱 절반에 도달했네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요?

그런데 교사가 된 지 14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수업이 어렵고,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작가님의 말에 저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가 일치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그래서 작가님께서 말씀해 주신, "서로를 믿어보자"는 말에 기대어 볼까 합니다.



작가님의 주문이 저에게 통했나 봐요. 그동안 방치해 두었던 소설을 다시 꺼내 대대적인 수정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와 계약이 된 상태도 아니지만, 이 소설을 잘 마무리해보고 싶어요. 이 소설은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별로 인기도 없고, 재미도 없는 것 같아서 다시 꺼내보기 두려웠는데, "과거의 우리와 비교하면 이미 꽤 많은 것을 가졌다"라고 말씀해 주신 작가님의 문장에 힘을 내어봅니다. 몇 달 전엔 보이지 않던 비문이 지금은 확연하게 보이더군요. 문장을 고치고, 단어를 수정하고, 불필요한 내용을 삭제하고, 인물을 바꾸고, 로맨스를 가미하면서 조금 더 재밌기를, 조금 더 의미 있기를 기도합니다. 과거에 썼던 글에 비해 지금 다시 쓰는 글이 조금 더 좋아지기를 바라면서요.


작가님은 늘 저를 다시 쓰는 길로 인도해 주는 사람입니다. 덕분에 5년 뒤의 제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무언가를 쓰고 있는 제 모습입니다.



8월의 밀라노는 꽤 한산합니다. 본격적인 여름 바캉스 기간이거든요. 이 시기에는 가게들이 한 달씩 문을 닫고 여행을 떠납니다. 어제는 집 근처 세탁소 앞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보고 웃음이 났어요. 여름휴가라서 한 달 동안 문을 닫을 거라는 내용이었어요.

그건 식당도 마찬가지인데요, 밀라노 시내 유명 식당들도 모두 한 달 내내 문을 닫습니다. 이들은 여름휴가를 가기 위해 일 년 동안 돈을 번다고 해요. 심지어 개학해서 학교에 가면 다들 여름 바캉스를 다녀오느라 까맣게 타서 오는데요, 몸이 타지 않은 아이들을 안쓰럽게 본다고 해요. 돈이 없어서 바캉스를 못 갔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돈을 모아 더 좋은 집을 사고, 건물을 사고, 투자를 해서 더 많은 돈을 보유하기 위해 일하는 우리들과는 사뭇 다른 것 같아요.


저희 회사는 한국 회사이기 때문에 이렇게 길게 쉬지는 못하지만, 1주일의 휴가 기간이 있어요. 이때 저희는 이탈리아 남부로 여행을 갈 계획입니다. 얼마나 더울지 상상조차 안되지만,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니 뜨거운 태양을 마음껏 즐겨보겠습니다. 아마도 더욱 검게 그을린 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작가님의 하루는 어떤가요? 여전히 삐그덕 거리고 있나요?

우리, 너무 좋은 엄마가 되려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해요.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란다고 하죠. 우리가 글을 쓰는 뒷모습과 책을 읽는 옆모습, 그리고 한결같은 앞모습만 가지고 있다면 (물론 가끔 화를 내는 모습도) 아이들은 올바르게 자랄 거라 믿어요.


작가님의 답장이 조금 늦더라도 이해할게요. 어린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답장을 쓰는 시간조차 내기 힘들다는 걸 아니까요.

무더운 여름, 부디 건강하길 바라요.



From.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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