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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r 17. 2019

마흔에게  보내는 편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는 삶

내 나이 스무 살 때, 얼른 마흔이 되고 싶었다. 마흔이 되면 돈도 많이 벌고, 내 집도 있고, 평범하지만 안정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0대에 바라본 마흔의 여성들은 모두 아줌마 같아 보였지만, 부러웠다. 그녀들의 안정된 삶이 좋아 보였다. 나도 그렇게 아줌마들처럼 살고 싶었다.

정작 마흔이 된 지금, 예측할 수 없는 하루를 산다. 내가 남편을 따라 해외에서 해외로 돌아다니며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내가 글 쓰는 삶을 살게 될 줄도, 날마다 그림을 그리게 될 줄도 몰랐다. 난 지금, 20대 때도 30대 때도 하지 않았던,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고, 그 과정을 즐기고 있다. 가장 놀라워하는 사람은 바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이다. 아마도 그는 나의 이런 모습이 낯설기만 할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러니까......


요 며칠 내가 몇 달 전에 쓴 글이  브런치 카카오 플러스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송되면서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되었다. 2년 전에 경험했던 일을 쓴 것이었는데, 영어공부라는 자극적인 주제 때문에 주목을 받게 된 것 같다. 주제만 영어 공부일 뿐, 그 글의 완성도는 매우 허술하기 짝이 없다. 글쓰기 강의 하나 제대로 들어보지 못하고 혼자 써 내려간 글이기에 어색한 문장과 단어들이 가득 들어있다. 당연히 여러 사람들이 내 글에 지적도 해주었다. 미쳐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적에 앛차, 싶었다. 이 글이 이렇게 주목받을 것이라 전혀 생각을 못했다. 그래서 단어 선정에 좀 더 심혈을 기울이지 못했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내가 처음으로 써 내려간 날것의 글이기에 그냥 두려고 한다. 그 또한 나의 역사이다.


내 작은 글에 사람들이 도전을 받고, 자극을 받았다는 말은 날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난 그럴만한 사람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 뭐 하나 꾸준히 해본 적이 없었다. 영어 공부도 한국에 있을 때 이것저것 시도해 봤으나 역시 꾸준함이 없었다. 그저 나도 평범한 한 사람처럼 남들을 부러워하고,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은 환경 탓을 했다.

날 갑자기 열심히 살게 해 준 한 사람이 있다. 아마도 그녀는 내 존재를 모를 수도, 아니 잊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내가 변하게 되었다는 것을 전혀 모를 것이다.




방글라데시에 살 때 페이스북을 하다가 우연히 한 친구의 페이지에 들어가 보게 되었다. 간호대학을 다닐 때 나는 A반, 그녀는 B반이었다. 대학교 입학식에서 그녀는 내 옆에 앉았었고 우연히 친구가 되었었지만, 반이 다른 관계로 나중에는 소원해졌다. 반이 다르면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 실습을 나가는 기간이 틀렸고, 수업 시간이 달랐다. 그렇게 우리는 멀어졌다.

내가 간호대학에 잘 적응해 이런저런 학교일을 하는 동안 그녀는 간호대학에 매우 힘들어하는 듯 보였다. 급기야 간호사 면허시험에 그녀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난 졸업과 동시에 병원에 취직을 했고 바로 간호사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으니 성공한 케이스였다. 병원 일을 하고, 네팔로, 방글라데시로 가서 살면서 그녀를 까맣게 잊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그녀를 보게 되었다.


그녀는 실용음악과 교수가 되어있었다. 개인 스튜디오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했고, 음반을 내고 있었다. 그녀는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냥 피아노를 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문가가 되어있었다. 어렴풋이 그녀가 피아노를 잘 치고 좋아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간호대를 다녔던 그녀가 진로를 확 바꿔 피아노를 다시 시작했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간호사 면허시험에 떨어졌고, 난 바로 간호사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대학교수이고 난 아무것도 아닌....... 그냥 엄마, 아내, 아줌마였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아름답게 바꾸어 놓았을까? 그녀의 삶에서 향기가 났다. 그리고 내 삶에 후회가 밀려왔다.

그 뒤로 난 자주 그녀를 떠올렸다. 그리고 내 삶을 그냥 이렇게 두기가 싫어졌다. 또다시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서른이었을 때, 나의 이십 대를

돌아보며 그렇게 후회를 했다. 네팔에서 2년을 지내고 한국에 왔을 때 정말 후회를 했다. 왜 더 열심히

하지 못했을까? 왜 언어를 좀 더 깊이 공부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글을 써 놓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내 나이 마흔이 되기 전에 뭐라도 해보자고 다짐했다. 더 이상 후회하는 삶을 살기가 싫었다. 그래서 영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게으른 마음이 들 때마다 그녀를 떠올렸다.

영어, 벵골어를 놓지 않고 했다. 인터넷으로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서 한국 아이들을 데리고 책놀이 수업을 했다.  더 이상 환경 탓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작년, 인도에 오면서 그림을 시작했다. 유튜브를 보며 따라 그리고, 블로그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따라 그렸다. 날마다 그리다 보니 그림이 조금씩 늘었다. 테크닉을 배운 적이 없어 뭔가 많이 부족하지만, 나만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가장 소망했던 일,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는 삶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래서 무작정 썼다.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치고.......


그리고 다시 도전을 하고 있다. 내가 쓴 글이 언제 책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받아주는 곳이 생길 때까지 계속 도전해보려고 한다. 거절당하는 것 또한 하나의 과정이고 경험이기에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마흔이기에 가능한 여유인 것 같다.


그녀는 모른다. 본인이 나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지금, 내 글을 읽고 영향을 받게 될 분들이 있다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흔인 나는 집이 없다. 미래가 불투명하다. 몇 달 뒤면 다시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가야 한다. 새로운 학교와 새로운 집, 새로운 환경에 또다시 적응해야 한다. 그럼에도 기대가 되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이 글을 쓰는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또 어떤 경험들을 하게 되고, 어떤 글을 쓰게 될지 기대가 된다.


내가 쉰 살이 되었을 때, 나의 사십 대를 후회하지 않기를, 열심히 살았다고, 고생했다고 나 스스로에게 칭찬 한마디 건넬 수 있기를.......

그래서 난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영어 공부를 하고, 또 다른 도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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