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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22. 2019

밥 말고 다른 게 먹고 싶었을 뿐.

파리약의 효능



집에는 먹을 게 없었다. 과자 비슷한 것도 하나 없었다. 그저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굶지 않고 하루 세끼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다행히도 농사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논에는 벼가 자라고 있었고 밭에는 온갖 야채가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난 밥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먹고 싶었다. 군것질이 하고 싶었다.

나의 군것질은 볶은 쌀이었다.

쌀을 대충 물로 씻어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쌀을 볶았다. 노릇노릇하게 쌀이 익어가면  설탕 두 스푼을 넣고 휘휘 저었다. 고소한 쌀과 달콤한 설탕, 적절한 기름기는 입이 심심한 나에게 가장 훌륭한 간식이었다.


12살, 어느 봄날.

모내기로 한참 바쁠 시기이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니 아무도 없다. 엄마 아빠는 들에 나가면 해가 진 뒤에나 돌아왔다.


안방과 작은방 사이에 식당 방이 하나 있었다. 그 식당 방 뒷문으로는 부엌이 있다. 부엌에는 아궁이와 온갖 부엌 살림살이들이 가득 있다. 어두컴컴한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엄마는 요리를 했다. 그곳은 엄마의 비밀스러운 공간이었다. 가스레인지가 언제 우리 집에 생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스레인지가 생긴 이후에도 우리 집 아궁이는 한참 동안 그대로 존재했다. 가끔 명절날이면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안방 바닥이 지글지글 끓어올랐다. 한 겨울, 따뜻한 안방 아랫목에 누워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식당 방으로 들어가니 바닥에 별사탕처럼 보이는 것이 있었다. 색깔도 노랗고 반짝반짝 윤기가 흘렀다. 그것은 분명 별사탕이었다. 어디서 난 건지, 왜 식당 바닥에 놓인 것인지 손톱만큼의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손으로 한 움큼 집어 들고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뭔가 맛이 이상하다. 달콤한 맛이 나야 하는데...


그제야 별사탕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파리가 여러 마리 죽어있었다. 얼른 입에 털어 넣은 것을 뱉어냈다.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아껴먹을 생각에 우적우적 씹어 삼키지 않았다.

그것은 파리약이었다.


빛깔 좋은 자태의 파리약은 파리뿐만 아니라 나까지 유혹하고야 말았다.


파리약을 먹으면 사람이 죽는지 사는지 모르겠지만, 난 죽진 않았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저 배가 고팠던 그때가 창피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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