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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23. 2019

왼손의 흉터

일하지 않아서 좋았을 뿐

시골에는 일년에 두 번 농번기가 있다. 봄, 모내기를 할 때와 가을, 벼를 추수할 때.

농번기가 되면 일주일 정도 방학을 했다. 그때는 아이들이 어른들을 도와 일을 해야 한다. 가끔 도시에서 학교 다니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농활을 하러 내려왔지만, 우리 동네는 너무 멀었던지 아니면 너무 작은 동네였던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품앗이를 했다. 오늘은 우리 논에서, 내일은 옆집 아줌마네 논에서 그다음 날은 그 옆집 아줌마네 집에서 일을 한다.

지금은 시골에 사람도 없고 기계가 다 있어서 자동으로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직접 손으로 다 해야 했다.

봄이면 논 양쪽에 사람이 길게 줄을 잡고 선다. 그 사이로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모내기를 했다. 줄을 잘 맞춰서 심어야 한다.

가을이면 잘 익은 벼를 거둬들여야 한다. 낫을 들고 일렬로 서서 벼를 벤다. 손으로 한 움큼씩 잡고 벼 아랫부분을 확 밴다. 손목에 힘이 필요하기도 하고 약간의 요령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11살, 가을.

가족들과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우리 집 논에서 벼를 베고 있었다. 그 논은 옛날에는 해창만 바다였는데 간척사업을 해서 바다를 매워 논을 만들었다. 그

중에 약간의 땅이 우리 논이다.

11살의 나. 어떤 모습이었을까?

난 낫을 들고 벼를 벴다. 그러다 왼손 검지 손가락을 베였다.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집에 가라고 했다. 수건으로 대충 감고 혼자 집으로 향했다. 손가락의 가운뎃 마디 부분이 푹 배어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논 바로 옆에는 냇가가 있다. 난 집으로 가지 않고 냇가로 내려갔다. 차가운 물에 손을 담갔다. 붉은 피가 물속에서 번져나갔다. 꽉 눌러 지혈을 해야 했다. 그런데 난 하지 않았다. 그저 물속에 다친 손을 넣고 요리조리 움직였다. 나의 손놀림에 맞춰 피가 요리조리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건 그냥 나만의 놀이였다.

일을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혼자 냇가에 앉아있는 것이 좋았다.

손가락의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피를 흘리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 정도 다친 것으로 병원에 갈 필요는 없다. 피는 멈출 것이고, 살은 다시 붙을 것이다. 손가락이 잘리진 않았으니 그것으로 됐다.


아무도 치료해주지 않았다. 괜찮냐고 물어본 사람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도 내 왼손에는 흉터가 크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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