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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20. 2019

다중언어(Bilingual), 가능할까?

프랑스학교 다니는 한국 아이들

국제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입학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입학을 원하는 아이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왜 이 학교에 입학을 원하는지, 아이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 건강은 어떤지 그리고 그 부모는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적는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몇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지, 그 언어는 무엇인지 표시해야 한다.


우리 두 아이가 다카 프랑스학교에 입학할 때 쓸 수 있는 말은 “Korean”뿐이었다. 아이들은 영어도 거의 못했고 프렌치는 전혀 몰랐다. 그리고 엄마인 나 역시도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그 당시의 난, 방글라데시의 공용어인 뱅골 어만 말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다카 프랑스학교에 다니던 첫 6개월 동안은 영어도 프렌치도 늘지 않았다. 나 역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학교에서 잘 놀고만 와 달라고 했다.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안 하고 무사히 등교하는 것이 목표였다. 말까지 빨리 잘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이들에게 폭력이었다. 낯선 환경과 친구, 낯선 언어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 아이들을 위한 결정이었지만 정작 6개월 동안은 갈팡질팡 하던 시기였다. 우리가 잘 결정한 것인지, 괜히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과연 프렌치와 영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인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특히 7살이었던 지안이는 더 힘들어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고, 선생님을 잘 따르지도 않았다. 그저 엄마가 학교에 가야 한다고 하니 가는 것뿐이었다. 아이는 그 안에서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견뎠을까?


다카 프랑스학교는 영어의 비중이 크지 않았다. 프렌치가 80%, 영어가 겨우 20%였다. 영어 수업은 따로 없었다. 단지 스포츠 시간과 미술 시간에만 영어로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 학교에 다니는 다른 아이들은 모두 영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이들은 수업시간에는 프렌치로 수업을 받지만 쉬는 시간이나 친구들끼리는 영어로 대화를 했다. 신기한 것은 영어도 프렌치도 모르던 소은이가 영어과 프렌치를 구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비슷하면서 다른 두 언어 사이에서 말은 못 하지만 구별은 할 줄 알았다.


반대로 뭄바이 프랑스학교는 영어와 프렌치 비중이 50대 50이다. 오전에 영어수업을 했다면 오후에는 프렌치 수업을 한다. 다음날 오전에는 프렌치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영어 수업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프랑스 아이들인 이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다들 프렌치로 대화를 한다.


두 아이가 프랑스 학교에 다닌 지 2년이 지났다. 영어도 프렌치도 전혀 못하던 아이들, 그 부모 역시 프렌치를 전혀 못하는 사람들.

과연 지금 두 아이의 상태는 어떨까?

다행히도 두 아이 모두 영어와 프렌치로 말할 수 있다. 그 언어를 이해하는 깊이는 알 수 없지만, 표면적으로는 말을 하고 있다.


소은이는 프렌치 부분에서 월등하게 성장했다. 다카에서 1년 반 동안 프렌치를 배웠지만 여름방학 두 달 동안 다 잊어버리고 뭄바이로 왔다. 처음 이 학교에 갔을 때 소은이는 말을 바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점점 귀가 트이고, 입이 트였다. 간단한 단어로 말하던 아이가 점점 문장으로 말을 하더니 지금은 의사소통을 잘하고 있다.

가끔 한국 사람들이 학교를 알아보러 방문하는 경우가 있다. 뭄바이에는 국제학교가 몇 개 없는데 그중에서도 프랑스 학교는 가장 인기가 없는 학교이다. 지금까지 한국 아이가 한 명도 없었을뿐더러, 한국 사람이 프랑스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학교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니 아무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이 프랑스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학교에 대한 정보가 생겨났다. 그리고 여러 부모들이 프랑스 교육과 학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 학부모들이 학교를 방문하면 교장선생님께서 학교 여기저기를 소개해준다. 학교가 워낙 작아 금방 끝나버리긴 하겠지만.

마지막 코스가 바로 아이들을 소개해 주는 시간이다. 교장선생님은 특별히 한국 아이인  소은이를 불러 몇 마디 대화를 한다. 한국 아이도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다들 선뜻 프랑스학교에 보내기를 두려워한다. 학교도 좋고, 선생님들도 좋고 프랑스 교육도 좋지만, 영어에 대한 비중이 적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더 선호한다. 다른 언어는 나중에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입시를 위한 영어공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그 반대이다. 영어는 언제 어디서나 배울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남편은 영어 공부를 20대 중반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과 비슷했다고 말한다. 문법은 알지만 말은 잘하지 못하는 그런 상태.


중, 고등학교 때 배운 영어로 머릿속에 여러 가지 문법과 단어는 가득하지만,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말 한마디 못하는 상태. 딱 그 상태였다.

20대 중반부터 38살이 된 지금까지 남편은 영어공부를 놓지 않고 하고 있다. 지금은 충분히 잘하는데도  공부를 한다. 날마다 듣고, 말하고 기록을 한다. 책장 한 곳에는 그가 10년이 넘게 기록한 수첩들이 가득 쌓여있다.

나 역시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다가 38살에 공부를 시작했다. 난 남편만큼 영어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다. 대신 다른 즐거움을 찾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떤다. 그래서 남편만큼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두려움은 많이 사라졌다. 얼굴이 많이 두꺼워진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이런 우리의 경험이 아이들의 교육에 그대로 투영된다. 영어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어디서든 공부할 수 있는 언어이다. 반면 프렌치는 다르다. 한국에 사는 아이들 중, 프렌치를 배우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물론 외고에 가서 프렌치를 전공으로 하는 아이들도 있고 대학에 가서 프렌치를 전공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아이들과 어울리며 프랑스 선생님께 직접 프랑스 교육방식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이것이 우리 아이들을 계속 프랑스 학교에 보내는 가장 큰 이유이다.


 소은이는 지금, 영어도 차츰 늘고 있다. 문법을 무시한 체 생각나는 대로 말하던 아이가 점점 머릿속에 영어의 틀이 잡히고 있다.

소은이의 영어 선생님은 조금 엄격한 편이다. 아이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콕 집어 말을 해준다. 아이에게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대놓고 말을 한다.

“집에서 영어로 대화를 하나요? 일상생활에서 영어로 말하도록 하세요. 되도록이면 현재형으로 말을 해주세요. 그래야 나중에 미래형과 과거형을 배울 때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어요. 지금은 계속 현재형으로 말하는 연습을 해주세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집에서 영어로 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히 남편은 저녁마다 소은 이를 데리고 영어책을 읽는다.  


지안이는 몇 달 전 까지는 프렌치보다 영어를 좀 더 잘하는 편이었다. 영어를 엄청 잘했다기보다는 영어에 비해 프렌치를 좀 더 못했다. 프랑스어 수업을 힘들어했다.

프렌치는 주어에 따라 동사 변화가 심하다. 규칙적이지도 않다. 그저 암기를 해야 한다. 프렌치가 모국어인 아이들은 이 부분이 어렵지 않겠지만 지안이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 그리고 모든 사물에 여성형과 남성형이 있다. 사물의 이름을 프렌치로 알아야 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 사물 앞에 붙는 관사까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언어이다.


프렌치를 잘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일대일 교육을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이 다 함께 프렌치 수업을 들을 때 지안이는 다른 선생님과 단 둘이 일대일로 개인수업을 했다. 이 수업은 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속해있기 때문에 부모가 과외비를 따로 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개인수업을 들은 지 3개월이 지나자, 지안이의 프렌치가 향상되었다. 처음에는 문장으로 말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지금은 여러 주제에 대해 자기의 생각을 잘 말한다고 한다.


지난 월요일, 지안이의 프렌치 담임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했다.

“오늘 지안이가 나에게 말을 정말 많이 했어요. 이렇게 말을 많이 한 적은 지금까지 없었어요. 지안이가 많이 발전했어요. 그래서 너무 기뻐요.”

학교에 다닌 지 7개월째, 드디어 지안이의 입과 귀가 틔였다.

“엄마, 지금은 영어보다 프렌치로 말하는 게 더 편해졌어.”

일대일로 수업을 해 준 선생님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 아이의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영어와 프렌치를 전혀 못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두 언어를 모두 구사한다. 엄청 잘하지는 못하지만 자신감이 많이 늘었다. 아 아이들에 발맞추어 엄마도 프렌치를 배우고 있다. 나 같은 부모(프렌치를 못하는 부모)를 위해 학교에서 학부모 프렌치 클래스를 개설해 주었다. 매주 목요일 오후, 소은이의 프렌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한 시간씩 프렌치를 배우고 있다.


“봉쥬르, 주 마 뺄 쏘냐.(나는 쏘냐입니다.)”

“제 텅트위떵.(나는 38살입니다.)”

“쥬 싀 팸 오 퐈이애.(나는 가정주부입니다.)”

“앙샹떼(만나서 반갑습니다.)


인도에 와서 힌디는 뒤로 미루고 프렌치를 배우고 있다.


이중언어는 쉽지 않다. 최근에 프랑스학교에 입학한 한국 아이는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다. 그 아이의 부모 역시 힘들어한다.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려야 한다. 내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해서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아이가 스스로 귀가 트이고 말이 트일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하면 아이도 부모도 힘들어지고 만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결코 쉽진 않겠지만.


이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면 당당히 입학원서에 쓸 수 있을 것 같다. 내 아이가 할 수 있는 언어는 “영어, 프렌치, 한국어”라고. 그 부모가 할 수 있는 말은? 글쎄, 아직은 프렌치가 많이 부족해서 당당히 쓰기는 힘들 것 같다.


그 부모가 할 수 있는 말은 “영어, 한국어, 벵골어.”라고 당당히 써야겠다.

언젠가는 프렌치 또는 힌디가 추가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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