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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26. 2019

풋사과같던 나의 첫사랑

남자 사람 친구

한 반에 여자 아이 고작 6명, 남자아이는 11명.  

그중에 그 친구는 무척 착했다.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지도 않았고, 여자아이들 치마를 들추며 아이스께끼를 하지도 않았다. 항상 허허허 웃고 다니는 그 친구는 화도 잘 내지 않았다.

어느 날, 친구들과 장난치다 내가 휘두른 나무 막대기에 그 친구 얼굴이 찔렸다. 너무 미안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사이 그 친구는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불끈 쥐고 아픔을 참고 있었다. 그 친구의 두 손이 부르르 떨렸지만, 화를 내지도, 나를 때리지도 않았다. 그 아이가 눈을 뜨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난 그  친구를 남몰래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시골학교에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말이 나오면 바로 놀림감이 되고 만다. 날 좋아한다던 몇몇 남자아이들 때문에 가만히 있는 나까지 놀림을 당하곤 했다.

“얼래 꼴 래리 얼래 꼴 래리, 누구누구는 다리 밑에서 뽀뽀했대요~~”

그런 적도 없는 일을 만들어 내 앞에서, 뒤에서 놀려대는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그 대상은 항상 나와 어느 힘이 약한 남자아이 몇 명이었다.


한 번씩 학교에서 남자아이들과 머리를 잡고 싸웠다. 집에서는 순한 양이었지만 학교에서는 사나운 늑대가 되곤 했다. 날 놀려대는 녀석에게, 힘없는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녀석에게 발차기를 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이기진 못했지만 울지도 않았다.


12살 추석날, 아빠 경운기를 타고 성묘를 가다가 말벌 떼를 만났다. 산길 근처에 벌집이 있었던 모양인데, 아빠의 요란한 경운기 소리로 벌들이 모두 나와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경운기에는 나와 남동생이 타고 있었다. 아빠는 동생을 먼저 데리고 급히 벌이 없는 아래로 내려갔다. 난 공포에 질려 꼼짝달싹 하지 못한 체 경운기 바퀴를 붙들고 앉아있었다. 벌들이 나를 빙 둘러쌌다.  공포에 질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빠는 옆에 있던 소나무의 나뭇가지를 한 손으로 꺾어 휘두르며 날 구하러 왔다. 아빠 손에 이끌려 산 아래로 급히 내려갈 수 있었다.

그 날, 난 얼굴에 벌침을 네 방 쏘였다. 머리 정수리. 눈 옆, 뒤통수.....

보건소에 가서 주사를 하나 맞고 집에 누워있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내 얼굴은 퉁퉁 부어 달덩이가 되었다.

내가 벌에 쏘여 집에 누워있는 동안 그 친구는 뱀에 물렸다. 독사라고 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아직 부기가 가라앉지 않은 달덩이 얼굴로 학교에 갔는데 그 친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독사라는데 괜찮은지...

다행히도 그 친구는 치료를 잘 받고 다 나아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갑자기 전학을 가게 되었다. 도시로 가는 것이 좋기도 했지만, 그 친구와 헤어지는 게 슬펐다. 내 마음을 한 번도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 친구도 왠지 날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학을 간 후, 그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면 그 친구는 답장을 해주었다. 특별한 내용도 없는 그런 편지였지만, 펜팔을 하는 것 마냥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답장을 받았다.

싱그러운 풋사과향이 나는 나의 어린 시절 첫사랑.



대학생이 된 후, 아이 러브스쿨이라는 사이트에서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그 친구와 다시 연락이 되었을 때 내 가슴이 살짝 떨렸다. 나의 어린 시절 향긋한 풋사과향이 다시 풍기는 듯했다.

20살, 대학에 입학한 우리들은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았다. 그 친구는 멀리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고 난 광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우리는 다른 친구 몇 명과 함께 맥주를 사다가 우리의 초등학교 앞다리 위에서 병나발을 불었다. 나의 첫 일탈이었다.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라왔다. 그 친구들과 수다 떨며 술을 마시고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다.

한 친구는 연상의 누나를 좋아하는데 고백을 못해 힘들다고 했다. 또 한 친구는 여자 친구와 헤어져 힘들다고 했다.  대학에 가지 못하고 바로 취업한 다른 친구는 일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우리의 스무 살.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흙먼지 속에서 뛰어놀던 우리들이 점점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간호대학 3학년,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두 달 동안 실습을 하게 되었다. 낯선 도시 서울에서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같이 노래방에 가서 소리를 질려가며 노래를 부르고, 영화를 보러 갔다. 풋사과 같던 우리가 갑자기 썸을 타는 관계가 된 시점이었을까?

그 친구는 오래 만난 여자 친구와 헤어진 되었고, 난 아무도 없었다.


그 뒤로 그 친구와 자주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좋았다. 착하기만 했던 그 친구의 어릴 적 모습이 좋았다. 그의 책임감 있는 모습도 참 좋았다.

그런데.......

내 삶을 지배하고 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신앙이다.

날 우울함 속에서 건져 올려준 것, 내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된 것, 초점 없던 눈동자에 희망을  품게 된 것.

그 아이와 연락하지 않고 지냈던 그 몇 년 동안 내 안에는 신앙이 자리 잡게 되었고, 내 삶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친구가 좋았다. 하지만 신앙이 없는 그 친구를 만날 수가 없었다. 결국, 먼저 그 친구에게 말하고 말았다. 친구로 남자고.....


그 뒤로도 종종 친구로서 연락을 하던 우리는 각자의 짝을 만났다.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그 친구는 오래 사귀다 헤어진 전 여자 친구를 다시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우리는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가끔 그 친구가 생각난다.

어렸을 적 그 모습 그대로 어디선가 좋은 아빠로, 좋은 남편으로 살고 있겠지.

결혼과 동시에 더 이상 친구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끊겨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 아마도 그것은 서로에 대한 예의였을 것이다. 그 친구는 그런 친구였다.


그런데 난 가끔 그 친구가 생각난다.

나의 남사친.

나의 어린 시절,  처음으로 좋아했던 친구.

사랑이라 말하기엔 조금 낯간지러운 친구.

덜 익은 풋사과 같던 나의 어린 시절 첫사랑.

언젠가 또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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