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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24. 2019

멋 좀 아는 아이

예뻐지고 싶어서


옆 동네에는 세련되고 이쁜 언니가 한 명 살고 있었다. 그 언니는 우리들 같은 시골뜨기와는 뭔가 달랐다. 옷도 예뻤고, 긴 머를 찰랑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무지 멋있어 보였다. 그 언니는 도시 여자처럼 보였다.


어느 날 그 언니가 윗도리와 바지가 한 세트인 옷을 입고 학교에 왔다. 핑크색에 가까운 보라색 옷이었는데 바지가 예술이었다.

고리 골덴바지

다리에 착 달라붙는 골덴에  발바닥에 끼우는 고리가 있은 바지. 마치 지금의 고리 레깅스 같은 느낌의 바지였다. 위부터 아래까지 풀장착을 한 그 언니는 크로스백을 하나 메고 왔다. 그 작은 가방마저도 핑크색으로 반짝였다.

그 언니는 마치 패셔니스타 같았다.


어느 토요일 오전,

엄마와 언니가 읍내에 있는 장에 간다고 했다. 나도 엄마를 따라가고 싶었다. 따라가서 그 언니가 입고 있던 옷과 비슷한 옷을 하나 사달라고 조르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안된다고 했다. 대신 옷을 사 오겠다고 했다.  

엄마에게 설명을 했다. 핑크색 고리골덴바지에 윗도리도 한 세트인 옷, 거기에 작은 크로스백 까지.

꼭 그 옷을 사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혹시나 엄마는 그 옷이 뭔지 모를까 봐 언니에게 다시 말했다.

“그 있잖아. 00 언니가 입는 옷 그런 걸로 사야 돼. 고리로 된 바지. 뭔지 알겠어?”

“응  알았어. 언니가 잘  찾아볼게.”


그렇게 언니와 엄마는 버스를 타고 읍내 5일장으로 떠났다.

나도 드디어 예쁜 옷을 입을 수 있겠구나....

가슴이 들떴다. 맨날 언니가 입다 작아진 옷을 물려 입었다. 새 옷이 몇 개 없었다.

새 옷이 생기겠지? 그것도 엄청 이쁜 색깔의 엄청 멋진 옷으로.

위, 아래 쫙 빼입고 학교에 가야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상상 속의 나는 이미 패셔니스타였다.


엄마와 언니가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야, 내 옷은?”

“응. 이거 니꺼.”

언니가 내민 검정 봉지를 얼른 풀어헤쳤다. 그 안에는 검정색에 가까운 진한 군청색의 골덴고리바지가 있었다.

“언니야, 이거야? 색깔이........

윗도리는?”

“야, 그게 제일 비슷한 거야. 찾아봐도 없드라. 그냥 그거 입어.”

결국, 군청색의 골덴고리바지를 입었다. 그냥 바지에 고리만 달린 바지.....

남자 바지 같기도 한 그 바지를 마르고 닳도록 입고 다녔다. 고리가 끊어질 때까지.



엄마는 자꾸 내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버렸다. 바가지 머리보다도 더 짧게 깎아버렸다. 머리를 길고 싶었다. 겨우겨우 단말머리쯔음 되었을 때, 앞머리만 파마를 하는 핑크 파마가 유행을 했다. 가끔 읍내 미용실에서 우리 동네까지 출장 파마를 하러 내려오긴 했지만 핑크 파마를 하고 싶다는 말은 못 했다.


어느 날 우리 옆집의 옆집 언니가 앞머리만 예쁘게 꼬불꼬불 파마를 하고 나타났다.

“언니야, 그거 어디서 한 거야?”

“야, 너 몰라? 이거 아카시아 잎으로 한 거야.”

그 언니는 나에게 아카시아 잎으로 어떻게 머리를 마는지 알려주었다.


논 옆에 있은 냇가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봄이면 그 나무에서 향긋한 꽃내음이 저 멀리까지 퍼져 나왔다. 아카시아 꽃을 따다가

뒷부분을 훅 빨면 꿀이 나온다. 먹을거리가 흔하지 않았던 그때, 자연에서 나는 모든 것들이 간식이었다. 꿀을 빨아먹고, 삐삐(삘기라고도 함)를 뽑아 질걸질겅 앂어먹고, 길가에 나 있는 찔래 줄기를 꺾어 뻣뻣한 겉껍질을 벗겨 내고 새하얀 속살을 먹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잠시 논에서 일하고 계시는 아빠한테 심부름을 하고 집에 가는 길.

아카시아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옆집 언니의 말이 생각나 아카시아 잎을 몇 개 땄다.

잎 줄기에 붙어있는 이파리를 모두 따버리면 가운데 부분의 잎 줄기만 남는다. 앞머리를 적당히 손으로 잡고 그 줄기에 감아준다. 아카시아 잎줄기는 질겨서 쉽게 끊어지지 않고 잘 휘어진다.

앞머리를 세 부분으로 나눠서  잎 줄기에 돌돌 말아 줄기 한쪽을 구부려 고정을 시켰다. 앞머리를 아카시아 잎으로 고정을 시킨 후, 아카시아꽃 한 움큼을 쥐고 집으로 향했다. 꽃을 하나씩 빼 들고 꿀을 빨아먹으며 걸어갔다.

집에 도착해서 머리에 말아놓은 잎줄기를 뺐다. 머리가 꼬불꼬불 해졌다. 마치 핑크 파마를 한 것처럼. 매우 만족스러웠다.  돈을 들이지 않고 파마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손으로 앞 머리를 매만졌다.

당분간은 머리를 감지 말아야지.

아카시아 잎으로 핑크 파마를 하는 방법.

이건 나만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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