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아이고, 미안합니다~
며칠 전, 남편이 대뜸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 자기한테 사과받고 싶은 게 있어.”
“..... 뭔데?”
“그러니까, 지난번에 내가 내 물건 어디에 있는지 아냐고 물어봤을 때, 자기가 그걸 왜 나한테 묻냐도 하면서 기분 나쁘게 쳐다봤잖아.”
“........”
“사과해. 나 진짜 기분 나빴어.”
“헐.......”
“얼른 사과해.”
해맑게 웃으며 사과를 요구하는 남편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어요.
“아아이고, 미안합니다~~~”
남편에게 감정이 상해 기분이 안 좋았던 날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의 말이 모두 밉게만 들렸어요. 매 번 자기 물건을 나한테 물어보는 것이, 자기가 써 놓고 어디에 뒀는지 기억을 못 하는 것이, 애도 아니도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난 네 엄마가 아니란 말이야~라는 심정이었지요.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갑자기 사과를 받고 싶다는 그의 태도였어요. 장난기가 섞여있긴 했지만 진심처럼 보였거든요.
원래 지나간 과거를 들춰서 사과를 하라고 말하는 쪽은 항상 나였는데......
나이가 드니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는 걸까요???
며칠 뒤였어요.
남편이 또 갑자기 그러는 거예요.
“나 사과받고 싶은 게 또 생각났어. 사과해.”
“헐.... 또 뭔데?”
“우리 방글라데시 살 때....... 어쩌고 저쩌고...... 했잖아. 사과해.”
“아 뭐야. 언제 적 이야기를 꺼내는 거야? 그때는 내가 진짜 힘들어서 그런 거지.”
“변명하면 진짜 사과가 아니지.”
“아아아 이이이 고오~~~ 미안합니다.”
그의 어깨를 감싸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제가 말했어요. 진짜 어이가 없네요.
“근데 지난번에 내가 뭐 사과하라고 했었더라? 기억이 안 나네. 뭐였지? 자기가 사과한 게?”
맞아요. 남편은 자기가 사과받아 놓고 무엇 때문이었는지 기억을 못 하고 있었어요.
“뭐였지????”
기억을 더듬고 있느라 무방비 상태인 남편에게 반격을 가했습니다.
“사과해.”
“뭘?”
“어제 내가 실수로 버린 건데, 자기가 엄청 윽박지르면서 눈을 부라리면서 말했잖아. 나 진짜 기분 나빴어.”
“아이고 미안합니다~.”
“또 사과해.”
“또 뭔데?”
“나 지안이 낳던 날 옆에서 졸았잖아.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근데 잠이 와?”
“아아아 이이이 고오~ 미안합니다.~~~”
ㅎㅎㅎㅎㅎ
있는 기억 없는 기억 모두 찾으면 사과해야 할 일이 누구에게 더 많을까요? 아마도 막상막하 일거예요.
“미안해.” 그 한마디가 뭐라고.
정작 그 당시에는 자존심 상해 말하지도 못했던 말이었죠.
장난이 섞인 미안해이지만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하니, 쫌 좋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속상한 일이 있을 테고, 사과할 일이 또 있을 거예요. 그땐 숨기지 말고, 참지 말고, 묵혀두지 말고, 바로바로 말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