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얼굴은 모르지만...
아이가 새로운 학교에 입학할 때마다 간절히 기도하는 게 하나 있다.
“제발 친한 친구 딱 한 명만 생기게 해 주세요.”
여러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 보다도 마음이 잘 맞는 딱 한 명의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글라데시 다카 프랑스 학교에서는 한국 친구 한 명이 같은 반에 입학하면서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었다. 덕분에 학교 생활에 조금씩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고마워 현수야~)
뭄바이 프랑스 학교에서는 그게 조금 힘들었다. 대부분이 프랑스 아이들이었고, 이미 그 전 학년부터 친구관계가 형성돼 있었기에 그 틈을 파고들기가 힘들었다. 다행히도 그중 매우 친절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뱁티스트라는 아이가 프랑스어가 서툰 내 아이와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지안이는 지금도 뱁티스트에 대해 매우 고마운 친구라고 말한다. 자기도 뱁티스트 같은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델리 프랑스 학교는 한 반에 18명의 아이들이 있다. 국적은 다들 제각각이다. 서양 사람들이 중국, 한국, 일본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 듯, 나 역시 여러 서양 사람들을 구분하지 못한다. 프랑스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스페인 사람이고, 스페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탈리아 사람이다. 그런데 왜 다들 영어도, 프렌치도, 스페인어도 다 잘하는지.
아이 반에서 동양 아이는 지안이 혼자이다. 그래서 어떤 아이 한 명은 지안이를 쳐다보며 눈을 찢어 보이는 제스처를 하면서 “차이니즈~”라고 하기도 했다.
참 이상하게도 동양 사람을 향해 “차이니즈~”라고 하면 인종 차별적 언행이 되어버린다. 다행인 것은 그렇게 말하는 아이를 향해 다른 친구가 이렇게 말해 주었다고 한다.
“너 바보냐? 지안이는 차이니즈가 아니고 코리안이야. 그것도 모르니?”
이런 아이들 사이에서 과연 친한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우정을 나눌 친구가 있을까?
친한 친구라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다름 아닌 프레이 데이트( playdate)이다. 즉, 학교가 아닌 곳에서 함께 노는 것이다.
해외에 막 나온 엄마들 사이에 플레이 데이트는 숙제나 다름없다. 친한 친구를 만들려면 꼭 플레이 데이트를 해야 하고, 그래야 말이 빨리 는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지안이 같은 성격(억지로 떠 밀면 절대 안 되는)의 아이들에게 플레이 데이트는 놀이가 아닌, 또 다른 스트레스일 뿐이다. 그래서 무작정 아무 친구들이랑 약속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진짜 놀고 싶은 친구여야만 했다. 그 기다림은 작년 9월 입학 후 부터 최근까지 이어졌다. 그러니까 6개월 동안 소은이가 3번의 플레이 데이트를 하는 동안, 지안이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어쩌겠나? 아이가 싫다는데.....
한 달 전 즈음, 메시지가 하나 왔다. 같은 반 친구, 라파엘의 엄마였다. 학교에서 라파엘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말은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라파엘의 엄마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기에 서로의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라파엘의 엄마는 워킹맘이었고, 라파엘은 항상 운전기사와 함께 학교에 왔다. 내 아이와 친해진 라파엘에 대해 궁금해하던 차에 메시지가 와서 매우 반가웠다.
라파엘의 엄마는 자기 집에서 플레이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온 것이다. 내 아이에게도 베스트 프렌드가 생긴 것이다.
그 이후, 금요일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놀고 있다.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 함께 논 아이들은 둘 만의 비밀이 생겼고, 학교에서 하루 종일 붙어 다니는 사이가 되었다.
학교에서 프랑스어 문법 공부가 점점 어려워지고, 수학도 점점 어려워져 스트레스가 많아지고 있는 요즘, 학교에 베스트 프렌드가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다른 친구가 지안이를 힘들게 하면 라파엘이 함께 싸워주고, 라파엘이 다치면 지안이가 함께 양호실에 가주고, 지안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라파엘이 소은이에게 소식을 전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난 아직 라파엘의 부모님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부모님이 일 하느라 바쁘다는 말과, 델리에 산지 꽤 오래되었다는 말만 들었다. 그건 라파엘 엄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만 알 뿐이다.
라파엘의 엄마도 나도 서로에 대해 묻지 않는다. 난 아직도 라파엘의 부모님 얼굴을 모른다. 우리는 그저 두 아이가 서로 좋아 죽는 모습에 흐뭇해할 뿐이다.
오늘 학교에 가니, 라파엘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날 보자마자 다가와,
“이번 주 금요일에 지안이 우리 집에 와요?”
미리 약속을 하지 않았기에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곤 라파엘의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먼저 물어보려고 했는데, 라파엘이 나보다 빨랐네. 기쁜 마음으로 지안이를 보내 줘.”
이보다 기쁠 수가 있을까?
내 아이에게 베스트 프렌드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