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간절히 원할 때, 그건 바로 꿈이었다.

1장.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삶은 지속된다.

by 선량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내 아이의 꿈이다.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이 질문이 얼마나 허망한 질문인지 알면서도 꼭 물어본다.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꿈도 없냐며 비아냥거리고, 농부가 되고 싶다고 하면 그런 힘든 일은 꿈이 아니라고 짓밟아 버리기도 한다. 어른들이 물어보는 꿈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이들의 꿈은 자랄수록 희미해진다. 부모의 입에서 언급되는 직업이 아이의 목표가 되어버린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한다. 현실 앞에서 꿈은 어렸을 적 꿈으로 남게된다.

나 역시 어렸을 적에 여러 가지 꿈이 있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고, 가수가 되고 싶기도 했다. 심리학자가 되고 싶었고, 상담사가 되고 싶었다. 결국, 수능 점수에 맞춰 간호학과에 갔고 간호사가 되었다. 한 번도 꿈꿔보지 않았던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꿈과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이십 대 때는 서른의 사람들이 다 큰 어른처럼 느껴졌다. 비혼이 트렌드인 지금의 시대와 다르게 10년 전만 해도 서른은 결혼하기에 조금 늦은 나이였다. 친구들은 스물여섯 살이 되자 하나, 둘 결혼을 했다. 이미 남자 친구가 있었던 친구들도, 남자 친구가 없었던 친구들도 (선을 보거나 소개팅으로) 결혼을 해버렸다. 결혼 적령기의 우리들에게 결혼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일은 가장 현실적인 꿈이었다. 난 그 숙제를 잘하지 못했다. 좋아했던 남자친구와 20대 중반에 헤어졌고, 그 후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들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날 좋아하던 남자는 내가 싫었고, 내 마음에 든 남자는 날 좋아하지 않았다. 남자를 만나는 것도, 결혼이라는 숙제도 거의 포기해버렸다. 혼자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적인 꿈 대신 다른 꿈을 꾸었다.

많은 사람이 현실 앞에서 꿈을 접어 깊은 서랍 속에 넣어두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꼭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서른이 되기 전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떠나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었다. 서른이 넘으면 그나마 남아있던 작은 용기와 무모함이 모두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스물여덟 살, 1월에 네팔로 떠났다. 2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 찬란한 서른을 맞이했다.

내 인생에 남자와 결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떠난 네팔에서 홍 군을 만났다. 마지막 남은 이십 대의 열정으로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두 살 연하의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 서른이 훌쩍 넘어 결혼이라는 인생 숙제를 해치울 수 있었다.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내 꿈은 다시 서랍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마흔이 넘은 사람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가끔 물어보곤 한다.

마흔이 넘은 사람은 적당히 꿈을 이룬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마흔이라는 큰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서른도 아니고 쉰도 아닌 마흔이라는 숫자의 존재감은 어마무시하게 컸다. 그 터널을 지나고 나면 진짜 어른이 될 것 같은 느낌이랄까? 더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면 안 되는 나이 같달까? 정작 내가 마흔이 되고 보니, 그건 끝없이 펼쳐진 숫자,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다 큰 어른 같지만, 여전히 아이 같고, 많은 것을 이룬 것 같지만, 제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에 대한 지식은 있지만 세상을 살아갈 지혜는 아직 부족한 그런 어른.

언제부턴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린 것 같다. 시계는 째깍째깍 흘러가고, 이마에 주름살은 늘어나고, 피부는 중력의 영향으로 축 처져가는데, 나는 왜 여전히 아이인 것만 같을까? 그래서 난 여전히 꿈을 꾼다. 아직 못다 이룬 꿈들을 꾼다.

어느 날, 윤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윤이는 어느 대학에서 재즈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다. 지방과 서울을 오가며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실용음악을 가르치고 있었다. 가족(남편 베이스, 아들 드럼)과 함께 재즈 트리오를 결성해 앨범을 내기도 했다. 윤이는 음악을 하고 있었다.

윤이를 처음 만난 곳은 간호대학 입학식이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던 우리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통성명을 했다. 집이 시골이었던 윤이는 학교 근처에 방을 구해 자취했는데, 그 집에 놀러가 잠깐씩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윤이와 난 반이 달랐다. 난 A반, 그녀는 B반. 반이 다르면 교실이 달랐고 수업 시간이 달랐고, 실습 기간도 달랐다. 우리는 점점 멀어졌고 조금은 어색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한 번씩 힘들어 보이는 윤이의 모습을 보았다. 간호학을 힘들어 하는 것 같았고, 병원 실습도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예배 시간에(기독교 학교였기에 매주 목요일 전체 예배가 있었다) 피아노 치는 윤이 모습에서는 힘든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윤이와 다르게 난 학교생활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친한 친구들이 생겼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밤을 새우며 공부했다. 동아리 활동도 하고, 학생회 활동도 하고, 학교 채플 시간엔 찬양 인도자가 되어 전교생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졸업도 하기 전에 특채로 병원에 입사해 바로 간호사가 되었다. 종합병원에 취업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은 날 부러워했다. 가족들은 나에게 성공했다며 칭찬해 주었다. 내가 고속열차를 타고 앞으로 달려가는 동안, 윤이는 내 기억에서 멀어졌다. 간호사 면허 시험을 통과했는지, 결국 간호사가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었다.

학교 선배의 SNS를 통해 윤이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다. 윤이가 맞나? 사진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이가 들어 성숙해 보이긴 했지만 그녀가 맞았다. 하얀 피부도, 동그란 눈도, 피아노 치며 반짝이는 모습도.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지지고 볶으며 일과를 보내고 있을 때, 윤이는 재즈 피아노 강사로, 선생님으로, 연주자로 그리고 훌쩍 큰 아이의 엄마로 삶을 보내고 있었다. 윤이의 모습을 본 순간, 번쩍 번개가 쳤다. 나는 성공했고 그녀는 실패한 것 같았는데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 보니 정반대였다. 그녀 앞에서 내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 같을 것인데,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이끌었던 것일까? 피아노 치며 반짝이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윤이는 꿈을 꾸었구나. 그 꿈을 놓지 않았구나. 남들이 다 가는 길로 가지 않았구나. 꿈을 향해 자신의 길을 간 모양이구나!

그날 이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 꿈이 무엇인지 생각하느라, 무엇부터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바빠졌다.

‘량아. 네 꿈이 뭐였더라? 아니, 지금 네 꿈이 뭐니? 꼭 아이들만 꿈을 꾸라는 법이 있니? 나이 들었지만 난 아직 꿈을 꾸고 싶은걸? 또다시 후회하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꿈을 좇아 가보지 않을래?’ 마음의 소리는 끈질기게 날 설득했다. 서랍 깊숙한 곳에 있던 꿈을 다시 끄집어 냈다. 연필을 집어 들고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꿈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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