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쓰기를 만나다.
블로그를 개설한 지는 오래되었다. 하지만 블로거라고 말하기 창피한 수준이었다. 주제도 없었고, 특별한 방향도 없는 공간이었다. 내 이야기를 블로그에 쓰는 것이 부끄러웠다. 당연히 이웃도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는 자주 기웃거렸다. 타인의 삶을 몰래 훔쳐보는 재미랄까? 그중에서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블로그를 자주 찾아갔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 전업주부 또는 전업주부이면서 뭔가를 하는 사람들.
우연히 한 블로그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블로그의 주인은 두 아이의 엄마였는데, 시골에 집을 지어 놓고 전원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다. 친정아버지가 연락도 없이 마당에 심을 나무를 들고 찾아오는 바람에 글쓰기 강의에 늦게 되었다는 그녀의 넋두리를 읽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걱정이라고는 없는 신세 좋은 아낙네인가 보다. 아유, 부러워라.’
급기야 댓글까지 달고 말았다.
“전원생활도, 글쓰기 강의도 정말 부럽네요. 전 해외에 살아서 글쓰기 강의를 듣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거든요.”
나의 부러움이 너무 솔직하게 드러나 버렸나 보다. 그녀는 내 댓글에 답글을 달아주었는데, 아이들 때문에 시골에 집을 짓게 되었다고 했다. 자기가 듣고 있는 글쓰기 강의를 소개해주기까지 했다.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없다면 자신의 글쓰기 스승님을 소개해 주겠다고도 했다. 온라인으로도 강의가 있으며 이메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갑자기 훅 들어왔다. 난 단지 부러웠을 뿐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이미 책 한 권을 출간한 정식 작가였다.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해외 배송으로 보내주겠다며 한번 더 내 안으로 들어왔다. 서로의 카카오톡 아이디를 교환하고, 연락처를 나누었다. 나이가 같았던 우리는 친구가 되어버렸다.
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사는 나는 얼마 전까지도 이북을 알지 못했다. 책이란 시큼한 종이의 냄새를 맡으며 손으로 한 장, 한 장 넘겨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외에 사는 내내 책을 살 수 없다는 핑계로 책을 읽지 않았다. 아이들 동화책만 읽으며 세월을 보냈다.
그녀의 책을 너무 읽고 싶었다. 스마트 폰에 전자책 앱을 다운받았다.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그녀의 책을 찾아 장바구니에 담았다. 결재만 하면 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이라면 쉽게 결재가 가능하겠지만, 해외에서 하려니 복잡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인증을 받으려면 심 카드를 한국 것으로 바꿔 끼워야 했다. 카드 결제는 해외라는 이유로 잘되지 않았다. 계좌이체를 하려고 하니 뭔가를 자꾸 설치해야 했다. 인터넷은 지나치게 느렸다. 보안 파일 하나를 받는 데 30분이 걸렸다.
아이들을 재우고 밤늦도록 컴퓨터와 씨름하다 겨우 책을 살 수 있었다. 드디어 그녀의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블로그만 보고 상상했던 그녀는 ‘아무 어려움 없이 전원생활을 즐기며 사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책 속의 그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치열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고,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사람이었다. 급기야 암에 걸려 어린 둘째 아이를 떼어 놓고 수술실로 들어가야 했던 엄마였다. 자책과 울분으로 가득한 삶을 살던 그녀는 운명처럼 글쓰기를 만났다. 위에 있는 음식물을 토해내며 글을 썼다고 했다. 몸은 여전히 약하고 힘들지만 글 쓰는 삶은 그녀를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고 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그녀를 오해했던 속 좁은 내 마음이 부끄러워 발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 아이들은 건강했고, 나 역시 아파본 적이 없다. 내 일상이 심심하긴 했지만, 죽을 것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힘들었던 일들을 읽고 나니 내 삶이 감사했다. 그게 또 미안했다. 타인의 불행을 읽고 내 삶에 감사를 느끼다니.
나도 그녀처럼 글이란 것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었기에 쓸 말이 없었다. 어떻게 글을 쓰는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녀가 자꾸 나를 잡아당겼다. 함께 그 길을 가자고 손짓을 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며 등을 떠밀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그녀의 끊임없는 프러포즈에 힘입어 글쓰기 특강을 찾아보았다. 금액이 만만치 않았다. 돈 한 푼 벌지 않는 전업주부에게 몇 십만 원 하는 강의는 사치였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출간작가들을 검색해 보았다. 정말 많았다. 이 많은 사람이 글을 쓰며 살고 있다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고 강연을 나가고. 난 마음은 있지만 멈춰 있는 사람이었고 그들은 마음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과연 나도 꿈을 좇아갈 수 있을까? 저 사람들의 무리에 낄 수 있을까? 해외에 살고 있고, 글쓰기 강의도 들을 수 없고, 책을 구하기도 힘든데?
어느 날 책 세 권이 도착했다. 함께 글 쓰는 삶을 살자며 그녀가 보내준 책이었다. 나를 잡아끌던 그녀가 드디어 나를 힘차게 밀었다. 난 그렇게 글쓰기라는 웅덩이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한번 빠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웅덩이였다.
‘아이와 기적을 만들다.’의 저자 박지은 작가님을 그렇게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녀를 안 지 3년이 다 돼가지만,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오로지 글과 블로그, 카카오톡으로 만난다. 내가 작가님 덕분에 글 쓰는 사람이 되었을 때, 작가님은 나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작가는 자신의 책을 출간하고 마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파고들어가 변화시키고 바꾸는 사람이라고 했다. 본인 역시 또 다른 작가의 손에 이끌려 글 쓰는 사람이 되었고, 진흙탕 같던 삶이 희망으로 바뀌었다면서.
우연처럼 보이는 모든 만남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절실한 마음과 간절한 바람이 맞닿아 이루어진 인연.
문장과 문장이 만나 만들어지는 한편의 글처럼 우리의 만남도 그렇게 한편의 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