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들고 공책에 쓰다.

2장. 쓰기를 만나다.

by 선량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이 끝날 때 즈음이었다. 밀린 방학 숙제를 하느라 매우 바빴다. 그중에는 독후감, 글짓기, 일기가 있었는데 쓰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때 도시에 살고 있던 사촌 언니가 잠시 놀러 왔다. 경이 언니는 나보다 한살 더 많았는데 머리도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고 심지어 얼굴도 예뻤다. 피부는 눈처럼 하얗고, 긴 머리는 양 갈래로 예쁘게 땋았다. 시골 볕에 타서 까무잡잡한 얼굴, 사내아이처럼 짧게 자른 머리카락이 마냥 부끄러웠다.

방학 숙제를 끝내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는 나를 보며 경이 언니가 한마디 했다.

“내가 써줄까?”

언니의 물음에 난 “응”이라고 대답했다. 경이 언니는 그 자리에서 동시를 쓱쓱 써주었다. 언니가 써 준 동시를 원고지에 옮겨 적고 내 이름을 적었다. 개학 날 그 동시를 학교에 제출했다.

당시 시골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제출한 방학 숙제를 전시도 하고 점수도 매겨 상을 주었다. 언니가 써 준 동시는 금상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나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다며 칭찬해 주었다. 담임 선생님은 매일매일 나에게 동시를 한 편씩 써서 제출하라고 했다. 내 재능을 계발시키고 싶어했다. 여러 선생님의 칭찬에 취해버렸다. 정말로 나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나 보다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그날 이후, 글 쓰는 게 좋아졌다. 학교 백일장 대회에 나가 동시를 계속 썼다. 그리고 상을 탔다.

포두면에서 주최하는 백일장 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게 되었다. 거기에서도 동시를 썼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런 상도 타지 못했다. 나는 스스로 알고 있었다. 나에게 입혀진 그 재능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또 한 번 백일장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이번엔 동시가 아닌 산문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주제 가운데 “절약”이라는 주제를 선택했다. 2시간 동안 원고지 15장에 글을 썼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가족 이야기, 아빠의 절약 이야기, 어떻게 절약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내 개인적 이야기 등등. 한편의 에세이를 쓴 것이었다. 그 글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학교가 아닌 포두면 백일장 대회에서 처음 받는 상이었다. 학교 조회 시간에 단상 위로 올라가 상품과 상장을 받았다. 상품으로 받은 칸나앨범 맨 앞장에 최우수상이라고 써진 상장을 고이 넣어두었다. 그 뒤로 내 꿈은 작가가 되었다.

어린 시절에 멈춰 있던 글쓰기의 역사는 홍 군과 연애하며 다시 살아났다. 3년 연애 기간 동안 떨어져 지내야 했던 시간이 1년 반. 그가 한국에 있을 때 난 네팔에 있었고, 내가 한국에 있을 때 그는 인도에 있었다. 장거리 연애를 하는 동안 서로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최적의 도구가 바로 국제 편지였다. 노트 한 권에 빼곡히 일기를 써서 기념일에 보내주기도 하고, 읽고 있던 책 모퉁이를 쭉 찍어 글을 써서 보내기도 했다. 이 일도 결혼과 함께 멈추고 말았다. 칭찬 받기 위해 쓴 글은 순수했고, 사랑 받기 위해 쓴 글은 에로틱했다.

결혼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부터는 어쩌다 한번 쪽지를 써서 주는 게 전부였다. 쓰지 않는 손은 굳어 버렸고, 생각하지 않는 뇌는 멈추어 버렸다. 어휘도,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고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순수한 글도, 에로틱한 글도 써지지 않았다.

박지은 작가님이 보내준 책을 읽으며 수박 겉핥기 정도의 지식을 갖게 되었다. 문장은 단문으로 쓰라는 것과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것. 지나친 부사는 안 쓰는 것만 못하다는 것. 직접적인 표현 대신 은유를 사용하라는 것.

뭐라도 쓰고 싶다는 열망은 갑자기 일었다. 눈앞에 굴러다니던 아이들 연필을 잡았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던 연습장을 펼쳤다. 첫 문장을 써 내려갔다. “그날은 추운 늦가을이었다.”

이제 막 10개월이 된 아이를 안고 남편을 따라 비행기를 탔던 모습을 떠올렸다. 이미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기에 잊혔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날의 공기와 감정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되살아났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장면 속의 나를 바라보며 글을 써 내려갔다. 방글라데시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장면, 공항에서 모기에 잔뜩 물려 박박 긁어야 했던 모습, 아이가 너무 울어 내려놓지 못해 품에 안고 화장실에 갔던 기억,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던 눈빛을 애써 모른 척했던 기억까지.

문장의 수려함 따위는 애초에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내가 그때 어땠는지, 왜 속상했는지, 아이를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낯선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떠오르는 대로 쓰기만 했다. 한참 그렇게 쓰다 보니, 글은 나를 더 먼 과거로 데리고 갔다. 불안했던 내 어린시절로 말이다. 이미 치유되었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되살아 났다. 글을 쓰는 동안 내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치유하는 글쓰기’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조금 억지 같다고 생각했다. 글을 쓴다고 해서 그게 무슨 치유의 능력이 있겠는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하고 감정을 나누는 과정 중에 치유가 된다면 모를까, 아무것도 아닌 글쓰기가 도대체 뭘 치유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날 그걸 알아버렸다. 종이와 연필이 내 감정을 받아내 주었다는 사실을. 숨이 없는 물체가 팔딱팔딱 뛰며 나를 위로했다는 사실을. 눈물 콧물을 쏟고 난 다음 고개를 들었을 때, 난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노트에는 내 눈물 자국과 함께 그날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의 이야기가 담긴 노트를 가방 깊이 쑤셔 넣었다. 그 가방을 메고 비행기에 올랐다. 인도, 뭄바이로 가는 비행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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