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_온라인 메모 모임

2장. 쓰기를 만나다.

by 선량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메모 모임에 참여하세요.”

블로그 이웃의 글에 뜬 모집 글을 보고 한참을 망설였다. 모임은 한 달 동안 진행되며 참가비는 3만 원이었다. 오프라인은 따로 없으며 날마다 주어진 미션에 따라 메모를 쓰면 된다고 했다.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과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왼쪽과 오른쪽에서 속삭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온라인 모임을 해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관계를 만든다는 것이 왠지 좀 쑥스러웠다.

글이라는 것이 참 이상하다. 혼자서 남몰래 쓸 때는 아무 말 대잔치여도 상관이 없지만, 한 사람에게라도 보이는 글을 쓰려고 하면 자꾸 마음이 간지럽고 숨기고 싶어진다. 노트에 남몰래 글을 적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남편이 볼까봐 꼭꼭 숨겼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내 노트를 펼치는 것도 괜히 싫었다. 혼자 쓰고 혼자 읽는 글. 독자도 없고 평가도 없는 글. 강으로 흐르지 못하고 작은 웅덩이에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었다. 내 글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전이 없는 글은 글로서 가치가 없었다. 그저 끄적거림 일뿐.

뭐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 평가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혼자 하는 영어 공부는 발전이 없듯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좁은 시냇가라도 흐르고 싶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다고 하니 해외에 있어도 충분히 가능한 일 같았다. 수첩에 계좌번호를 적었다. 휴대폰을 들고 은행 앱을 실행시켰다. 3만 원을 계좌이체 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한다.

일면식도 없는 10명 남짓의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했다. 사는 지역도 다르고, 하는 일도 모두 달랐다. 하지만 메모를 통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모두 비슷했다. 오히려 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 마음을 좀 더 풀어지게 했다. 메모 모임의 리더 이윤영 작가님은 글쓰기가 어렵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하루 한 줄부터 시작하라고, 꾸준히 쓰라고, 무슨 말이든 글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혼자 쓰는 글 말고 읽히기 위한 글을 쓰라고 당부하셨다.

이른 아침이면 카톡으로 오늘의 메모 미션이 전달되었다. 그 미션에 따라 글을 짧게 적었다. 한 손에 들어오는 수첩과 색색깔의 펜을 구비했다. 수첩에 그림을 그리며 짧은 글을 적기도 하고, 핸드폰 앱을 이용해 메모하기도 했다. 그렇게 메모를 한 후 카카오톡으로 보내면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이 돌아왔다. 우울한 마음을 쓴 메모에는 힘내라는 파이팅 피드백이, 즐거운 내용의 메모에는 정말 좋아 보인다는 긍정의 피드백이 돌아왔다. 아이들에 대한 메모를 적었을 때는 이미 아이들을 다 키운 노년의 회원으로부터 그때가 가장 좋을 때라는 격려가 돌아왔고, 남편에 대해 메모했을 때는 우리 남편도 그렇다는 공감의 피드백이 돌아왔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공감 마법’을 만난다. “정말 공감돼요.” 주문은 너무나 강렬해서 글쓰기라는 성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든다. 조금이라도 더 공감받는 글을 쓰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더 공감된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고 분석한다. 좋은 말로 하면 인문학이고 나쁜 말로 하면 관심종자이다. 인문학의 ‘인’자도 모르던 나는 공감 마법에 걸린 관심종자가 되었다.

그렇게 쓴 메모를 블로그에 다시 정리해서 올렸다. 메모 모임 멤버뿐만 아니라 다수의 대중에게 보이는 글을 쓰고 싶었다. 메모 글을 블로그에 올리니 그동안 잠자고 있던 블로그가 북적이기 시작했다. 다른 멤버들과 이웃이 되어 서로의 글에 응원의 글을 남겼다. 신기하게도 심심하던 내 하루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메모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인상 깊은 구절 찾아서 적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적기, 지금 읽고 있는 책 한 구절 적기 등. 아주 짧은 메모를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메모에 내 감정이 컨트롤 되고 생각이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게 아이들에게 화를 덜 내고, 남편에게도 짜증을 덜 내게 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매 순간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상황은 어떻게 써볼까? 이런 글은 어떨까? 이 글은 꼭 남겨야 해. 이 장면은 꼭 사진을 찍어야 해. 그렇게 하루하루를 기록해 나갔다.

메모와 함께 책 읽는 재미를 알기 시작했다. 작가님의 추천 도서를 전자 책으로 읽으며 서로 의견을 나눌 때 희열감을 느꼈다. 글쓰기와 책 읽기는 동반자와 같은 사이다. 글만 많이 쓴다고 해서 좋은 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책만 많이 읽는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책을 읽으며 글을 쓸 때, 글을 쓰며 책을 읽을 때 생각과 사고가 점점 성장할 수 있었다. 관심종자가 인문학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었다.

한 달이면 충분할 줄 알았던 메모 모임을 다음 달에도 신청했다. 메모 습관을 들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습관이 생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 66일이라고 한다.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글쓰기 습관을 만들고 싶었다. 물론 온라인으로 알게 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동안 집에서 혼자 중얼거리던 내가 온라인으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니,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총 3번의 메모 모임에 참여했다. 처음엔 겨우 두세 줄이던 메모가 점점 길어졌다. 어쩔 땐 노트 한 페이지가 할애되기도 했다. 3개월 동안 메모 모임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글감을 떠올리는 습관이 생겨났다. 이제 나만의 글을 써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이윤영 작가님이 나에게 물었다.

“글이 쓰고 싶은 거예요, 작가가 되고 싶은 거예요?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봐야 해요. 단지 글이 쓰고 싶은 거라면 아무 주제나 써도 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면 좀 더 공부하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야해요.”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 했다. 단지 글만 쓰고 싶은지, 작가가 되고 싶어서 글이 쓰고 싶은지.

솔직히 말하자면, 작가가 되고 싶었다. 아무런 타이틀도 없이 글을 쓰는 건 나에게만 좋은 글일 뿐이다. 혼자 쓰고, 혼자 읽고, 혼자 기뻐하는 글 말고 독자를 위한 글을 쓰고 싶었다. 내 이름이 적힌 책 한 권을 내고 싶었다. 사람들로부터 여전히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골방 문을 열고 세상을 향해 나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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