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루틴은 없습니다만,

3장. 매일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by 선량

글쓰기 관련 책을 읽어보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글쓰기의 루틴을 만들어라.”

즉, 자기만의 글쓰기 습관을 만들라는 말인데, 습관이 되면 저절로 글이 써진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새벽에 일어나 물을 한잔 마시고 세수를 한 후 스트레칭을 하고 노트북을 켠 다음 글을 쓴다고 했다. 규칙적으로 똑같은 행동을 한 후 글을 쓴다고 했다. 처음엔 새벽에 일어나기가 힘들었지만, 습관이 된 후로는 그 시간이 너무 좋고 글이 저절로 써진다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집에서는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아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향한다고 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적당한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 글이 저절로 써진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늦은 밤, 모두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 쓰는 글이 잘 써진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한 규칙적인 습관이 필요하다고 했다. 글을 쓰기 전에 하는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면 글도 습관적으로 써진다는 말이었다.

내가 처음 따라 한 것은 새벽 글쓰기였다. 새벽 5시에 알람을 맞춰 놓았다. 한동안은 나도 새벽형 인간이 되어보고자 애를 쓰고 일어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새벽 시간은 너무나 빨리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몇 자 쓰지도 못했는데 이미 해가 밝아오고, 아침을 준비할 시간이 되니 조바심이 났다. 아이들 도시락을 싸야 하고 아침밥 준비를 해야 하고, 아이들 깨워 학교에 가야 하는 나에게 아침 시간이 부담되기 시작했다. 물론 글도 잘 써지지 않았다.

다음은 카페형 글쓰기였다.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한국이라면 걸어서 10분 거리에 카페가 있겠지만, 우리 집 근처에는 카페가 없다. 차를 타고 10분 넘게 가야 한다. 나만의 글쓰기 루틴을 만들고자 차를 타고 이동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 놓고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는데 왠지 잘 써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 집중해서 글을 쓰고 있는데 낯선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옆에 앉아있던 인도 아저씨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그 책은 무슨 책인가요? 무슨 일 하고 있죠?”

내가 말을 걸고 싶을 정도로 예쁜 것도 아니고 더욱이 마흔이 넘은 아줌마에게 작업을 걸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분히 개인적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사람. 아…… 불편하다. 노트북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올빼미형 글쓰기에 돌입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일찍 재워야 했다. 두 아이는 자기 전에 꼭 책을 읽어줘야 한다. 이것도 두 아이의 오래된 습관인데, 그 습관을 하루라도 건너뛸라 치면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이 습관을 길러준 장본인이 바로 나라는 사실.

아이들를 양옆에 끼고 책을 읽어준다. 예전에는 그림책을 읽어주었는데 지금은 그림책 대신 단행본을 읽어준다. 문제는 그림이 거의 없고 글이 엄청 많다는 사실. 평균 3~4 챕터를 소리 내서 읽어주는데 가끔 목에서 피 맛이 난다. 아이들이 엄마의 목소리를 듣다 스르르 잠들면 참 좋으련만 요즘은 자지 않고 끝까지 버틴다. 책을 덮고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함께 누워있으면 스르르 잠이 온다. 결국,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자버리고 만다. 자다가 깨면 밤 11시. 글쓰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기에도 너무 좋은 시간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글쓰기와 드라마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노트북 대신 핸드폰을 들고 소파에 가로누워 버리는 나. 오늘도 망했다.

나에겐 딱히 글쓰기 루틴이 정해져 있지 않다. 딱 한 가지. 글을 쓰면서 커피(믹스 커피 또는 블랙커피 상관없이)를 마신다. 카페인이 내 몸에 들어가 심장을 쪼여주고 뇌를 자극해야만 생각이라는 것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글쓰기 루틴이 없으므로 글이 잘 안 써지고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 핑계를 대본다.

나는 루틴 없이 시시때때로 쓴다. 머릿속에 소재가 떠오르면 한참을 생각한다. 이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글로 연결해 볼까? 사람의 인생과 연결할까? 아니면 육아와 연결해 볼까? 그러다 연결고리가 떠오르면 그때부터 생각의 집을 짓는다. 이때 메모를 해 둔다. 수첩이든, 휴대폰이든 생각의 조각을 적어 놓으면 나중에 다시 꺼내 쓰기 편리하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것은 카카오톡이다. 생각이 떠오를 때 바로 옆에 수첩과 펜이 있다면 바로 적을 수 있지만 그게 아닐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카카오톡의 “나와의 채팅”을 이용한다.

소재를 찾았다고 해서 바로 글이 써지는 것도 아니다. 한참을 생각하며 집을 지어야 한다. 쓰고 싶은 소재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인문학적으로 연결된 것은 없는지 고민하기도 한다. 가끔 생각의 집을 짓는데 한 달이 걸리기도 하고, 어떨 때는 1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내 경험에서 나온 소재라면 일상 에세이처럼 막힘없이 써나갈 수 있겠지만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소재를 쓰는 일은 막연하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모든 작가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나 보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의 저자 이다혜 작가님은,

“경험과 독서는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다. 걸을 때 왼발 오른발을 번갈아 걷는 것처럼 읽고 경험하고를 번갈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 구절을 읽고 무릎을 쳤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경험과 독서, 독서와 경험이 두루두루 섞여 있어야 한다는 그 말이 마치 나에게 부족했던 부분을 콕 집어 알려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글이 잘 안 써지는 이유는 나만의 글쓰기 루틴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내 경험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본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직장에 다니며 상사에게 깨진 경험도 없고, 또 남들처럼 성공한 경험도 없고. 그러니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내 일상, 내 가족, 내 친구, 아주 사소한 과거의 일, 아주아주 사소한 경험, 아주 아주 아주 사소한 내 의견일 뿐이다. 이런 글도 쓰기만 하면 글이 되긴 하겠다. 하지만 얼마나 큰 공감을 살지는 미지수이다.

나만의 글쓰기 루틴을 굳이 말해보자면, 일단 커피를 탄다. 노트북을 켠다. 쓰고 있던 파일을 연다. 그리고 멍하니 바라본다. 뭐라도 생각나면 쓰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으면 그냥 바라보고만 있다. 책상은 아이들 책과 장난감으로 지저분하고, 싱크대에는 설거짓거리가 쌓여 있고, 세탁기는 세탁이 끝났다고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웅웅 거린다. 이 와중에도 생각의 꼬투리가 터지는 날에는 그냥 써진다. 아이들이 학교 가고 아무도 없는 날, 공기 청정기의 바람 소리만이 윙윙 거리는 날. 내가 뭘 해도 되는 그런 날. 왠지 글이 잘 써질 것처럼 고요한 날. 노트북 앞에 앉아 있지만, 머리를 아무리 굴려도 한 글자도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카페인만 계속 마셔 대서 화장실만 들락거린다.

나에겐 글쓰기 환경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잘 써지는 날이 있고, 잘 안 써지는 날이 있다. 쓸 거리가 넘치는 날엔 하루에도 여러 편의 글을 쓰고, 아무리 쥐어짜도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날엔 한 글자도 쓰지 못한다. 그냥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이면 경험이 되겠지. 경험이 뭉치고 뭉치면 글이 되겠지. 글이 모이고 모이면 책이 되겠지.

나만의 특별한 글쓰기 루틴이 없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루틴이 있는 사람들보다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하지만 그 글의 퀄리티는 장담할 수 없으니, 일단 잘 써지는 날엔 많이 써 놓고 보자.

골방에서 혼자 읽고 혼자 쓰고 혼자 공부해서 스스로 성장해 훌륭한 작가가 되겠다는 내 포부는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이것도 두고 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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