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매일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상처가 존재한다. 부족한 인간이기에,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우리는 상처를 주고받으며 이 세상을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상처 같은 것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화목한 가정, 우애 좋은 형제 사이, 사이 좋은 친구 사이 그리고 별 탈 없는 사회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나 빼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 문제이다. 내 가정생활만 힘들고, 내 아이들만 이렇게 많이 울며, 내 부모님만 나에게 상처를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부모, 남편, 아이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타인의 상처를 마주하게 될 때 이상하게도 안도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저 사람도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만 아픈 줄 알았는데 저 사람도 아팠구나,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저 사람도 힘든 시절이 있었구나. 그건 바로 안도의 한숨이고 공감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는 일이다. 그 일은 가슴이 너무 저려 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그랬다. 토해내고 싶었지만, 그 상처를 꺼내 마주하기가 겁이 났다. 그런데도 써야 했던 이유는 좋은 일, 행복했던 기억만으로는 종이 한 장을 다 채우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좋은 일만 생기는 것 또한 아니었다. 계속 쓰고 싶은데 쓸 말은 없고, 무엇을 써야 할지, 생각 속의 생각을 헤집고 들어가 보니 그곳에 상처로 가득한 내가 있었다. 결국 하얀 종이에 그것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얀 종이가 내 상처로 얼룩지자 내 몸도 함께 반응했다. 눈물이 흘러내리고 가슴이 저렸다. 엉엉 소리 내어 울다 꺼억 꺽 가슴을 치며 통곡도 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시원했다. 감춰진 무언가를 꺼내 세상 밖으로 내놓았을 때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처는 더이상 상처가 아니었다. 드디어 상처는 아물어 작은 흉터로 남게 되었다. ‘말그릇’의 저자 김윤나 작가님은, “해결되지 못한 채 마음속에 남아 있는 문제들은 자꾸 현재로 튀어나와 비슷한 문제들을 만든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것을 똑바로 응시해야 한다. 그것이 두렵다고 주변만 서성이다 보면 상처는 깊어진다.”라고 했다. 내 상처를 꺼내 글로 썼을 때, 내 마음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마음의 문제가 더는 나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다.
이런 상처를 나만 볼 수 있는 골방에 저장해 둔다면 진전은 없다. 자신의 상처를 글로 이겨냈다고 자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치유를 원한다면 그 상처를 공개해야 한다. 골방 문을 열고 나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의 글을 볼 수 있게 되고 진정한 치유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공개적으로 자신의 상처를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얼만큼이나 공개해야 할지, 너무 지나치게 나를 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더욱이 상처의 시작이 부모나 형제, 부부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내 글이 가족들에게 날카로운 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작가님이 그랬다. 글 쓰는 사람 옆에는 사람이 모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떠나가기도 한다고. 특히 가족과 원수가 되기도 한다고. 그래서 객관적인 시선이 더욱 필요하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내가 쓴 글의 최초 독자는 바로 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 보면서 문제는 없는지, 누군가에게 칼이 될 수 있는 문장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최근에 나 역시 그 부분을 간과하고 글을 쓰는 실수를 범했다. 경험과 글쓰기에 관한 글이었는데, 내가 직접 해 보지 않은 경험을 예로 들면서 ‘공황장애’를 언급했다. 나는 공황장애를 하나의 경험으로 생각하며 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쓸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글을 썼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고통속에 사는지 헤아리지 못했다. 어느 독자의 지적으로 그제야 내 부족했던 생각에 많이 부끄러웠다.
내 상처를 꺼내어 공개적으로 글을 쓸 때 역시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새하얀 종이는 내 감정을 모두 받아줄 수 있는 그릇이 되어 주지만, 걸러지지 않은 작가의 감정을 고스란히 읽는 독자는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독자를 위해서는 친절한 절제와 설명이 필요하다. 주관적인 감정만 나열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상황, 당시의 행동, 내 표정과 모습 등을 설명해 준다면 독자는 머릿속으로 마음껏 상상할 수 있다. ‘엄마의 얼굴이 너무 슬퍼 보여 마음이 아팠다.’라는 주관적인 감정전달 보다는 ‘일그러진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뒤돌아서서 가슴을 움켜잡았다.’라고 내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고 설명하는 방법은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배운 방법이다. 어느날 작가가 되었습니다. [아넷 하위징 , 토토북] 책에 등장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린다 아줌마는 주인공 카팅카에게 매번 이렇게 말한다.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
글은 독자를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독자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고, 독자의 공감을 얻은 작가는 자신만 그런 건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상처의 고백과 독자의 공감이 만나 서로가 서로를 치유해 주는 일이 일어난다. 그 시작이 바로 내 상처를 공개적으로 쓰는 일이다.
어렸을 적 정서적으로 힘들었던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여러 번 울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썼다. 굴러다니는 노트에 쓰고, 남편이 사 준 노트북에 쓰고, 블로그에도 쓰고 브런치에도 썼다. 이제 내 어린 시절이 불쌍하지 않게 되었다. 눈물도 나지 않는다. 부모님도 원망스럽지 않다. 오히려 그분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행복한 내가 되었다.
뭔가 힘든데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를 때, 그때가 바로 글을 써야 하는 시기이다. 뭔가 쓰고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모를 때, 그때가 바로 내 상처나 아픔을 들여다 봐야할 때이다. 그 기억을 더듬어 들어가보면 생각 속의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드디어 그것을 글로 써 내려갈 때 작가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약을 바르게 된다. 독자의 공감은 그중 가장 좋은 약이 되어준다. 나도 그랬다고, 나도 힘들었다고,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정말 힘들었겠다고 위로를 받는 사람은 분명 그 글을 쓰기 전보다 한 뼘 더 행복해질 것이다. 드디어 상처에 딱지가 생기고 작은 흉터만 남게 될 것이다. 내 몸에 작은 흉터 하나쯤은 남겨 놓아도 되지 않을까? 흉터는 아프지 않을테니.
고통은 자신을 알아가고 타인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글을 쓰며, 세상에 화려한 꽃을 피우는 꽃이 아닌, 내면의 꽃을 피우는 무화과가 되겠다. [가만히 내 얘기 좀 들어주세요./박기량]